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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2014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

snowfrolic 2014. 11. 8. 14:55

 

 

워낙 연초부터 기대했던 영화라 개봉날 볼까 했지만... 요즘 주중 업무 부하가 큰편이라 하루 양보하여 평소 패턴대로 금요일 심야를 보기로 결정. M2관 D나 E열 정도를 생각했는데 화제작인데다가 급하게 예매를 하다보니 좋은 자리가 없어서 처음으로 C열을 시도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 시작시간에 맞춰서 겨우 입장.

 

감독의 고집으로 35mm 필름으로[각주:1] 촬영된 영화다 보니 디지털 영화 대비 상대적인 화질 저하와 필름 그레인이 눈에 두드러졌다. 하지만 그게 싫지는 않았다. 사실적인 우주공간의 묘사와 실제 세트로 제작된 우주선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다큐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음악의 사용은 철저히 억제되었고 효과음조차 우주공간에서는 들리지 않도록 묵음 처리하여 의도적으로 다큐처럼 보이게 한다. 웜홀, 블랙홀, 특이점, 이벤트 호라이즌, 일반 상대성 이론 등 현대 천체물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소재들이 등장하고 실제 아무도 본적이 없는 웜홀과 블랙홀의 시각적+음향적 묘사가 흥분을 일으킨다.

 

 

그러나 내가 만족스러웠던 것은 시공간적으로 엄청나게 멀어져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은 생이별을 하고 먼 시간 후 재회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더 정확히는 아버지와 딸 간의 이야기가 이 영화의 기본 골격이기 때문이다. 딸을 다시 만나고 싶은 아버지의 강한 의지 그리고 아버지의 존재를 다시 느끼고 싶은 딸의 그리움, 즉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두 존재 간을 연결하는 강력한 힘이 그 불가능해 보이는 재회를 이루어내는 열쇠로 작용한다. 이게 남녀 이성간의 사랑이었다면 오글거리는 영화가 되었을 테지만 누구도 고깝게 생각할 수 없는 부녀간의 사랑을 주제로 하여 자식이 있는 부모라면 특히 딸바보 아버지라면 감정이입이 증폭될 수 밖에 없게 한다. 영화는 이 주 플롯을 직선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두세 껍질로 둘러싸인 조금 복잡한 순환 구조로 풀어내는데 메멘토나 인셉션에서 보여준 것 처럼 감독의 취향이 반영된 부분이기도 하다.  

 

인류가 이주할 행성을 찾기 위해 우주선이 떠난다. 먼저 진행된 탐사 결과로서 3개의 후보 행성에서 연락이 오고 있는 상황. 계획은 밀러 행성, 만 행성, 에드먼드 행성 순서로 가는 것이다. 하지만 첫번째 행성 탐사에서 예상외로 연료를 소모한 탓에 지구로 귀환하기 위해서는 만과 에드먼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이 결정 과정을 주의깊게 봐두어야 하는데, 아멜리아(앤 헤서웨이)는 신호는 불확실하지만 마음이 원하고 있는[각주:2] 에드먼드를, 쿠퍼(매튜 매커니히)는 신호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조건이 확실한 만 행성을 주장한다. 데이터에 의한 객관성을 주장한 쿠퍼의 결정으로 그들은 만 행성으로 향한다. 그러나 만 행성에서 그들이 만난 것은 지구 귀환에 눈이 먼 과학자(맷 데이먼)와 조작된 데이터였다.

 

마지막 블랙홀 장면에서 쿠퍼가 분해되지 않고 어디론가 이동하여 일종의 매트릭스 공간으로 가는데, 논란이 많은 장면이다. 그 공간은 누군인지 5차원의 존재에 의해 만들어진 4차원의 공간으로 그가 살던 집의 딸 머피(멕켄지 포이, 제시카 차스테인)의 방과 연결되어 모든 시간의 사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 곳에서 딸과 수년(으로 추측)만에 간접적으로 재회하는[각주:3] '콘택트'가 이루어지고 극의 최고 절정에 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그럼 과연 그 5차원의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그 존재는 블랙홀에서 뿐만이 아니라 공간이동을 위해 필요한 웜홀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게 누구인지는 인셉션의 마지막 팽이처럼 영화의 내용으로는 알 수 가 없다. 외계인이라고 쉽게 단정지어도 무리는 없겠지만 그것보다는 아주 먼 훗날 문명이 엄청나게 발달한 인류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지. 과거의 자신에게 NASA의 위치를 알려주고 머피에게 중력방정식의 마지막 키인 양자데이터를 전달해 주는 것은 결국 쿠퍼 자신이었듯이 인류에게 위기에 빠진 스스로를 구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주는 것은 5차원의 존재가 된 미래의 인류가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감독은 영화 통해 결국 모든 것은 정해진 대로 된다는 운명론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초반에 쿠퍼는 이름 때문에 불만을 말하는 딸에게 얘기한다. "머피의 법칙은 나쁜 일이 일어난다는 뜻이 아니야. 그건 일어날 법한 일들은 일어나게 된다는 뜻이야."

 

 

이렇게 보면 인터스텔라는 하드 SF의 소재들을 사용하지만 정작 사건이 풀리는 방식들은 우연과 감정, 인간의 의지에 기대는 부분이 많다. 물리학 석학 킵 손 박사에게 자문을 받을만큼 과학적 배경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정작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과학이나 공학적 능력만이 아닌 수치화할 수 없는 인간의 직감이나 애정, 의지에 달려있는 부분도 크다는 것이다.

 

로버트 저매키스의 '콘택트'[각주:4] 등 기존 SF 영화들에서 어떤 면에서는 선라이즈의 '기동전사 건담'이나 가이낙스의 '톱을 노려라'에서도 사용되었던 설정들이 사용되고 있어서 소재가 아주 참신한 영화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SF를 감독 특유의 아날로그적 취향으로 묘사하면서 그 장치들을 통해 가족애와 운명론과 같은 인간에 대한 얘기를 강렬하게 말하고 있는 부분이 정말 좋았다. 인셉션에서 왕실망했던 부분이 인터스텔라에서는 충분히 채워졌다. 다만 그 이야기를 드라마적으로 풀어내는 부분은 아쉬움이 좀 있었다.

 

지구에서의 장면 등 초중반 이야기의 호흡은 느린편이긴 한데 과감한 점프도 있어서 지루하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긴 호흡을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스타일이 좀 달라져서 아닌가 했지만 음악은 역시 한스 짐머가 담당했다. 음악의 사용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억제된 편이다. 호흡도 느리고 음악도 안나오니 사람에 따라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법 한데, 옆자리에선 코골며 자는 사람도 있었다. 후반부에 깬것 같았지만...

 

매튜 매커니히의 연기는 최고였다. 수상할지는 모르겠지만 내년도 아카데미 남우주연 노미네이트감은 되지 않을지. 앤 해서웨이의 역할이나 연기, 표정 모두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보다 훨씬 좋았다. 맷 데이먼의 출연은 의외였는데 Tue Grit에서도 뭐 그런 역할로 나오더니 여기서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본'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

 

 

메가박스 영통 M2관에서 C열에서 본 것은 처음이라 괜찮을까 했는데... 조금 무리이긴 했다. 의자가 좋아서 올려다 보는건 버틸만 했는데 스크린이 사다리꼴로 보여서 자막이 너무 크게 보였다는. 역시 D열 정도가 마지노선인 듯한데 예매가 좀 늦다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IMAX 상영관이 아님에도 시야가 꽉찬 느낌은 좋았다. M2관의 Meyer EXP Sound는 웜홀, 블랙홀 장면에서 한 몫을 단단히 했다. 그 장면 내내 좌석이 덜덜덜 떨리는 저역대의 체험을 선사한다.

 

 

 

 

2014년 11월 7일 메가박스 영통 M2관 22시 50분편. C13,14

 

 

  1. IMAX 부분은 70mm 필름으로 [본문으로]
  2. 연인이었다는 설정 [본문으로]
  3. 딸은 30여년 만에 [본문으로]
  4. 콘택트에서도 매튜 매커니히가 출연. 우주 조종사는 아니었지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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