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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2010

고민이 부족한 영화 '무적자' (A Better Tomorrow, 2010)

snowfrolic 2010. 9. 22. 18:49

우리나라에서 영웅본색을 리메이크 하겠다고 얘기가 나왔을 때부터 심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예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원작을 능가하는 리메이크를 한적이 거의 없고 개인적으로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얼마전 리메이크작 무적자의 완성 소식과 같이 공식 트레일러 영상을 보게 된 나는 '이거... 잘됐던 아니던 보기는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영웅본색 네 남자의 이야기를 다른 모습으로 전해주는 영상에 마음이 확 동했다고나 할까... 어떻게 설명할지.. 예를 들면 평소 좋아했던 저니의 Without You를 머라이어 캐리가 리메이크한다고 얘기가 나왔을 때 리메이크를 잘했던 아니건 간에 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과 같은 것일 듯 하다.

그래서 개봉 후의 평점이나 후기가 그다지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추석 전날 밤, 심야상영 관람을 감행하였다. 무적자는 김혁이 악몽을 꾸는 첫 장면부터 영웅본색과 거의 동일하게 시작한다.



결론은 글의 제목처럼 무적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이 부족했던 영화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성의없는 영화라는 것. 영웅본색 리메이크의 조건으로 드라마에 중점을 둘것을 강조했던 오우삼 감독은 파이란과 우.행.시를 보고 송해성 감독에 만족했다고 했으나, 정작 송해성 감독은 무적자에서 드라마에서도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우삼 감독이 드라마와 액션을 아우르는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송해성 감독은 결정을 해야 했다. 영웅본색의 뼈대를 그대로 가져갈 것인지, 소재만 차용한 채 새로운 영화를 창조할 것인지 (마치 팀버튼의 배트맨과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나이트 처럼?). 영화가 공개된 지금 무적자는 후자의 리메이크 방식은 아니었고 전작의 뼈대를 가져가되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인 탈북자들의 애환과 같은 그런 이야기를 버무리기로 한 듯 싶다. 똑같이 리메이크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었는지... 그러나 결과적으로 무적자는 영웅본색의 뼈대를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였고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잘 버무리는 것에도 실패해버린다.

영웅본색은 오우삼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는 아니다. 이 역시 1967년 용강 감독의 '영웅본색'(영어 제목은 A Better Tomorrow가 아닌 The Story of a Discharged Prisoner)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영어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는 15년형 후 석방된 죄수가 조직의 유혹과 경찰인 동생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이야기한다. 1986년 오우삼의 영웅본색은 근본적으로 이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마라는 영웅적인 캐릭터를 추가하고 액션 장면을 가미한 것이다 (왕년의 액션 스타였던 적룡에 헌정하는 영화). 그렇기 때문에 적룡이 연기한 송자호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집중되고 갈등의 발생과 해결이 명확하며 이를 전개하기 위한 에피소드의 연결이 자연스럽다.

반면 무적자 경우, 이야기의 중심이 재기를 위해 노력하는 출소자의 그것이 아니라 탈북시 헤어진 동생과의 우애를 되찾는 것으로 옮겨진다. 에피소드의 구성은 원작을 따르면서 이야기의 뼈대를 바꿔버렸기 때문에 영화 전체가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인지 알 수없이 산만해지고 말았다. 더구나 동생이 왜 형에게 원한을 가지게 되었는지, 후에 다시 마음이 돌아서게되는 계기는 무엇인지도 불분명하다. 그러니 극 중 상황을 통해 관객에게 감동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주진모와 김강우의 연기에 의존하거나 쓸데 없는 마지막의 회상 장면 같은 것을 통해 울어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배우들도 불분명한 전후 상황에서 감정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을 듯 싶다.




송자호는 출소한 후 동생의 아파트 근처에서 동생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동생 송자걸은 철저히 형을 외면해 버린다. 구슬픈 당연정의 변주곡과 함께 처량하게 담배를 물고 항구에 앉아있는 송자호의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주인공의 고민이 무겁게 느껴지게 하는 명장면이다. 그러나 무적자 김혁의 출소 후 항구 장면은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라는 의문이 떠오르게 한다.



무적자에 나오는 유일한 여성 등장인물인 포장마차 할머니. 이 분의 역할은 영웅본색에서 송자호의 직장인 택시회사 사장 화숙의 그것으로 생각되는데, 사실상 있으나 마나인 비중이다. 화숙은 전과자 직원인 송자호의 자립을 위해 중심을 잡으라고 충고하는, 송자호의 양심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반면 소마는 조직에 대한 복수를 요구함). 그러나 포장마차 할머니는 김혁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조폭들이 포장마차를 뒤집어 놓으며, 이에 대해 할머니는 왜 김혁을 원망하지 않는지? 고민없이 상황만 빌려 썼음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송해성 감독이 영웅본색의 리메이크를 맡게 된 동기는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무적자의 형제가 우애를 되찾게되는 인과관계에 있어서 그들이 북한 출신이라는 것과 그들의 탈북 과정의 무언가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또한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것의 어려움이나 나쁜 길로(극중 김혁, 이영춘 처럼) 빠지게 되는 상황에 대한 고발이라도 하고 있는지? 전혀 아니다. 탈북자 출신이라는 것은 다른 것으로 바꾸어도 전체 이야기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단순한 설정일 뿐이다. 오히려 이 설정으로 인해 전체 이야기만 혼란스러워지고 말았으며 제대로 하려면 전작의 틀을 포기하고 새로 틀을 짰어야 했다. 왠지 전작과 차별화를 내지는 마케팅을 위해서 대표적인 한국의 소재거리인 탈북자 설정을 급조해 만들어 넣은게 아닌가 하는 것은 지나친 생각인 걸까?

또한 크게 아쉬운 부분이 바로 음악이다. 오우삼의 영웅본색은 음악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고민하는 송자호의 마음을 말하는 듯한 당연정의 변주와 영웅적인 소마의 캐릭터를 반영하는 마크의 테마가 여러 여러 형태로 반복되면서 관객의 감정을 조율한다. 하지만 무적자에서는 무언가 무적자만의 identity가 느껴지지 않는 침울한 음악에, 김혁과 이영춘의 재회장면을 포함하여 두어군데 등장하는 영웅본색2 분향미래일자의 연주곡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자신이 없었다면 차라리 영웅본색의 OST를 편곡해서 그냥 사용하는 것이 어땠을까? 영웅본색의 소마가 보트를 돌리는 장면에서 느꼈던 카타르시스가... 리메이크건 어쨌건 그 장면에서는 정말 그런게 느껴져야 하는데... 이영춘이 보트를 돌리는 장면에서는 그런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OST의 힘이다.

기타 부산 사투리 연기 문제 등 쓰고 싶은 몇가지가 더 있지만 그냥 넘어가려한다. 전체적인 무적자의 분위기는 욕설이 난무하는 전형적인 우리나라 조폭 영화에 총격전 등 이것저것 섞어 넣은 것 같은 것 같고, 94분의 전작을 별 이유없이 124분으로 늘려놓아 좀 지루한 감이 있다. 무적자가 영웅본색과 비교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또 어떨지 모르겠다. 무적자 자체로 몰입할 수 있었다면 최고는 아니라도 볼만한 영화였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웅본색의 장명장면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에게는 무적자의 모든 장면 대사 연기가 영웅본색과 비교되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리메이크 작의 숙명인 것이다. 적어도 원작에 대한 좀 더 깊은 분석과 그것을 바탕으로 리메이크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을 했어야 했다. 그러기에 이번 무적자 팀은 너무 성의가 없었다. 송해성 감독님은 그냥 멜로 드라마 영화만 계속 하시는 것이 좋을듯 싶다.

차라리 아예 영웅본색과 동일한 이야기와 음악을 가지고 업그레이드만 했다면 어땠을까? 깨끗한 영상과 사운드도 그렇고... 분명 총격전에서 느껴지는 리얼리티와 박진감은 전작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너무나 좋은 소재를 가지고도 범작을 만들어버린 아쉬움에 해본 말....





2010년 9월 21일 (화). 메가박스 영통 2관. 오후 10시 35분 편. 별 세개.




무적자 (2010)

A Better Tomorrow 
5.6
감독
송해성
출연
주진모, 송승헌, 김강우, 조한선, 이경영
정보
드라마, 액션 | 홍콩, 일본, 한국 | 124 분 | 2010-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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