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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2013

일대종사 (一代宗師, The Grandmaster, 2013)

snowfrolic 2013. 9. 9. 22:55





원화평이 무술감독으로서 연출한 무협영화들은 많지만 일대종사는 그 중 정점에 이른 듯하다. 또 다시 왕가위가 아니고서는 이를 넘어설 무협영화는 나오기 힘들 것 같다. 그러나 일대종사는 기존의 여타 무협물의 연장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영춘권의 엽문(양조위), 궁가 64수의 궁이(장쯔이), 팔극권의 일선천(장첸)의 세 명이 주요 인물인데 엽문과 궁이의 주된 일대기에 일선천이 살짝 걸쳐있는 구성이다. 일대기라고는 했지만 왕가위의 영화가 그렇듯 디테일하고 짜임새있는 대사를 통해 내러티브를 구성하기 보다는 영상으로 의도를 던지는 식이기 때문에 122분의 짧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많은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지는 않다. 중국인들의 무협 환타지를 왕가위식 영상으로 아름답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 일대종사의 역할이다. 





주의깊게 봐야할 또 하나의 축은 엽문과 궁이의 감정선이다. 둘 사이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장면은 영화 중에 나오지 않는다. 호감을 표시하는 듯한 표정조차 보이지 않으며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도 불과 3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두 인물의 배치와 교차하는 시선, 손 짓과 발의 움직임과 같은 디테일의 묘사를 통해 주변 공기를 팽팽하게 긴장시키면서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인물의 감정을 체험하게 되는데 지극히 동양화 같은 접근이다.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을 만한 엽문과 궁이의 대결 씬. 음식점 탁자에서 마주보고 있는 장면부터 심상치 않은데, 결연한 표정의 궁이가 초식을 펼치기 전에 취하는 잘 정돈된 손짓에서는 묘한 에로티시즘마저 느껴진다.[각주:1] 이런 왕가위 특유의 세련된 감정 전달 방식은 '화양연화'에서 아주 압도적이었는데 일대종사에서도 그런 방식은 매우 효과적이었고 개인적으로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관객이 느낄 법한 두 사람 간의 교감은 마지막 만남에서 궁이의 대사를 통해 친절하게[각주:2] 확인이 된다 - '한 때 당신을 마음에 품은 적이 있었다'. 홍콩 편집본에서는 궁이의 마음을 한번 더 확인시켜주는 장면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 편집본(인터내셔널 버전)에서는 삭제되었다.


덕분에 엽문의 아내인 장영성(송혜교)만 불쌍하게 되었음.




양조위가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고 장쯔이는 나이가 들면서 연기가 더 좋아진 것 같다. 화장기 없이 무표정한 궁이의 연기는 최고였다. 송혜교는 대사가 한 번밖에 없어서[각주:3] 화보를 찍은 듯한 느낌.


왕가위 감독의 색깔이 철철 묻어나오는 작품을 또렷한 디지털 화면과 좋은 음향으로 볼 수 있게 되어서 만족스러웠다. 워낙 제작을 오래하는 사람이라 다음 작품을 언제 다시 만날지...





일대종사 (2013)

The Grandmaster 
8
감독
왕가위
출연
양조위, 장쯔이, 송혜교, 장첸, 조본산
정보
무협, 액션 | 중국, 홍콩 | 122 분 | 201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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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양 영화였다면 아마도 베드씬으로 바로 이어졌을 듯. [본문으로]
  2. 굳이 할 필요가 있었을까? [본문으로]
  3. 그나마 더빙 처리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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