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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의 추억

snowfrolic 2011. 7. 18. 02:11

이 시점에서의 일본 만화 얘기는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정식 수입이 시작된지 20년이 넘어가는 현재, 일본 만화는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으며 그동안 한국 만화들도 많이 발전해서 그 이상의 퀄리티를 가진 작품들도 나오고 있다.[각주:1]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음... 내가 처음 일본 만화를 접했을 때의 추억을 써보려고 한다.


먼저 그 때가 어떤 시절이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일본 만화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선보이기 시작한 것은 1989년 아이큐점프에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볼이 연재되기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1980년대초 이전에는 어린이 잡지였던 소년중앙, 어깨동무, 새소년 등에 연재되는 만화들이 볼 수 있는 전부였고 당시의 만화로는 길창덕 화백의 꺼벙이, 쭉정이, 박수동 화백의 번데기 야구단, 신문수 화백의 로봇찌빠, 김원빈 화백의 주먹대장 등이 기억이 난다. 1982년이 되자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형태의 만화잡지인 보물섬이 창간되었는데, 이에 자극받은 기존의 어린이 잡지들도 부록 수준이었던 만화별책을 점점 두껍게 하기 시작하면서 작품의 수도 늘어나고 장르도 다양한 만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주력 작가분들이 이상무, 이두호, 이우정, 이향원, 김형배, 이현세, 허영만 氏 등 이었다. 1980년대 중반에는 이현세氏가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전국적인 대히트를 치면서 최고의 인기작가로 등극하였고[각주:2] 그 이후로도 연달은 히트작을 내면서 대략 10여년 동안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전성기는 직접 기획,감독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아마게돈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끝을 맞게 되었던 것 같다.


그래. 그런 시절이었다. 이 시기의 일본 만화라는 것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우리나라 만화인 것 처럼 둔갑되어 출간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동짜몽(도라에몽), 바벨2세, 권법소년(일격전), 용소야(쿵후소년 친미) 등이 그랬다.


때는 1987년. 평화로운 만화 매니아 시절을 보내고 있던 그 때. 우리 반에 한 녀석이 전학을 왔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다 가족이 귀국하면서 들어오게 된 것. 그려러니 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 녀석이 몇 권의 만화책을 가지고 학교에 왔는데... 아... 그것을 처음 본 순간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야말로 문화충격. 아무 대비없이 그 때 봤던 만화가 3대 일본 만화라고 일컬어지는 '북두의 권'과 '시티헌터'였던 것이다.[각주:3] 


먼저 본 건 시티헌터 1권.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섬세한 세련된 터치와 배경의 묘사. 어색하지 않고 극화다운 인물 및 신체의 묘사. 너무도 리얼한 암살자의 세계. 그리고 섹시한 여자들 (1권에 전편에 걸친 단 한번의 누드가 나온다). 정말 이럴 수가 없는 거다. 그야말로 신세경.

총을 쥔 자연스러운 모습, 사건을 해결해가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신선했다.


그 때는 일본어를 해석하지 못했기 때문에 사에바 료의 개그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림만으로도 그 상황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아니 필사적으로 이해하고 싶었다는게 더 정확할지도...


북두의 권은 충격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했다. 작화는 섬세하면서도 시티헌터와는 다른 거친 터치로 남성적 감성을 자극한다. 무엇보다도 놀랐던 것은 잔혹한 장면들의 리얼한 묘사였다. 비공을 찌르는 북두신권의 공격을 받은 자는 일정 시간 후 머리가 갈라지던지 내장이 터지며 죽게 되는데, 작가님께서는 친절하게도 가리지 않고 리얼하게 그대로 그려주신다.

"집념!! 나를 변하게 한 것은 네가 가르쳐준 집념이다!!" 아... 멋있다.


옴니버스 방식인 시티헌터와는 달리 이야기를 이어가는 북두의 권의 극적인 전개에도 감탄했는데, 예를 들면 위의 장면. 주인공 켄시로는 서던크로스에서 숙적 신을 만나 복수의 대결을 펼치는데, 남두성권의 계승자인 신의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 손모가지를 잡아버린다. 그리고는 말한다. "나를 변하게 한 것은 네가 가르쳐준 집념이다!!" 그리고 1권 끝. 와~ 뭐야 이거. 이거 드라마야? 그 다음 편을 열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게하는 이와 같은 마무리는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이었다.

당시 자율학습 시간에 책속에 몰래 숨겨 놓고 북두의 권을 보고 있다가 감독 선생님께 걸려 만화책을 압수당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그 선생님께서 책을 돌려주시면서 "이거 재밌는데? 다음 거 어딨냐?" 하시던 기억이 난다.

1990년인가 나중에 정식 한국어판이 출간되었을 때, 반갑고도 기쁜 마음에 사서 보았지만 많이 실망하고 말았다. 판형이 커지면서 작화가 확대되어 터치들이 많이 거칠어져 보였던 것에 실망하였고, (어쩔 수 없었겠지만) 자극적인 장면들이 세련되지 못하게 수정되어 전체적인 느낌을 크게 훼손받은 것에 실망하였다. 소중하게 기억되어 온 명작 만화가 3류 만화의 느낌으로 번역된 것에 나름 분노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북두의 권 1,2권이 심했다).


여하튼 정리하면... 이 때 받았던 충격이 나를 관련산업 종사자로 만들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랬어야 했을까?), 지금까지 살면서도 그런 정도의 문화충격을 받아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당시 그 만화들을 둘러싼 일련의 경험들은 내 학창시절을 크게 뒤흔들었던 대사건이었고[각주:4]... 이 후 나는 한동안 "북두의 권" 풍의 그림만을 계속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려대게 되었다.[각주:5]




  1. 시장의 문제가 한국 만화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기는 하다. [본문으로]
  2. 1986년에 이장호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까지 했다. [본문으로]
  3. 3대 만화는 북두의 권, 시티헌터, 드래곤볼. 지금도 유효한지는 잘 모르겠다. [본문으로]
  4. 이 시기 또 하나의 문화충격이라 할만한 것이 있었는데 같은 해 여름 영웅본색을 극장에서 본 것이다. [본문으로]
  5. 그 그림들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분노에 찬 얼굴을 한 근육질의 권법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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