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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s/2011

영화 "300"의 뒤늦은 감상 (300, 2006)

snowfrolic 2011. 2. 8. 02:09

 

2011년 설날 연휴의 마지막 날. 연이 닿지 않아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 300을 보았다. 보기전에는 그냥 스파르타 전사 300인의 전투를 묘사한 영화라는 정도 외에는 무지한 상태였는데... 보고 나니 몇가지 생각이 드는 바가 있어 글을 쓴다.

 

영화 300은 미국의 유명한 만화가 Frank Miller의 만화 300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이다. 同 작가 원작의 이전 영화인 Sin City의 노선을 그대로 따르는, 만화의 장면을 그대로 영상화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원작 만화 300은 역사적 배경이 되는 테르모필레 전투에 대한 전후 설명은 과감히 단순화하고 스파르타의 왕인 레오니다스 1세와 스파르타 정예 전사 300인의 영웅화에 집중한다. (선동을 위한 작품들이 대부분 그렇듯)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실의 과장과 역사적 왜곡은 필수다. 침략자인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각주:1] 왕은 괴기스러운 몬스터의 수괴처럼 묘사되고 그의 군대는 페르시아 병들처럼 보이는 부대부터 닌자부대 및 돌연변이 괴물들로 가득하다. 식스팩 복근을 보여주기 위해 갑옷 조차 입지 않은 300인의 스파르타 정예군은 그야말로 일당 백이다. 1인당 페르시아 군 100명씩은 죽이는 것 같다. 전투에 동참한 아네테 군대는 일하던 아저씨들을 모아놓은 민방위 부대 정도로 묘사되고 마지막에 부대가 포위되자 아테네로 도망쳐 버린다.

 

이런 원작을 그대로 영상화하기 위해 90% 이상을 블루스크린 촬영을 하고 후반작업(대부분 CG작업이겠지)에만 1년 이상이 걸린 영화에 대해 역사 왜곡이니 따지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는 듯 하다. Frank Miller에게 먼저 따져야 겠지. 하지만 영화라는 영상 매체가 가지는 전달력을 생각해보면 페르시아 제국의 후손이라 할수 있는 이란에서 제작사인 워너에 커다란 항의를 표시한 것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굳이 Frank Miller의 관점이 아니라도 왠지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군대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고대 그리스-아테네의 헬레니즘 문화가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고 이 서양 문화가 현대 문화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악의 축 대접을 받고 있는 이란-이라크 지역의 페르시아 문명을 미국 문화계에서 좋은 이미지로 포장해 줄 리가 없다.[각주:2]

 

그러면 실제로는 어땠을까. 

 

영화에서 영웅화 되고 있는 스파르타는 혈연으로만 유지되는 시민계층 "스파르티아타이"와 인구의 80%가 넘는 노예계층 "헤일로타이"로 철저히 분리된 계급사회였다. 시민계층에서만 정규군에 편입될 수 있었고 노예들은 철저하게 인간이하의 모욕적인 대접을 받았으며 시민계층은 합법적으로 노예들을 살해할 수 있기도 하였다. 같은 그리스 반도의 폴리스 중 하나였지만 그리스 연합군에 같이 하는 것은 스파르타 자신이 주도할 때만 이었다. BC492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1세가 주도한 1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당시에도 종교행사중 전쟁참여 금지를 이유로 스파르타는 연합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불과 12년뒤, 우습게도 영화 300에서의 레오니다스는 역사속에서의 선왕과 달리 종교행사 중의 출전을 반대하는 사제들과 의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테르모필레로 출전한다. 실제로 스파르타의 육군은 주변국들이 두려워할만한 강대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시절부터 BC371년의 레욱트라 전투에서 패배할때까지 무려 110년 동안 정규군이 동원된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았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 Xerxes는 페르시아식 표기가 아닌 그리스식 표기이다. 영어 발음은 "저억시스"에 가까운데 이게 왜 크세르크세스가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나 방향족 분자인 자일렌 Xylene을 크실렌이라 부르기도 했으니 뭔지 모를 그 영향인 듯. 페르시아식 표기는 خشایارشا "크샤아샤-"에 가깝다. 동전에서 보이는 크세르크세스 대왕의 모습은 영화에서와는 많이 다르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선왕인 다리우스 1세와 함께 페르시아 제국의 시작이라 볼 수 있는 아케메네스 왕조의 전성기를 이루어 낸 인물이다. 지금의 리비아에서 인더스 강, 아랄해 유역까지 이르는 영토를 정복했으며 정복민에 대한 관대한 정책을 펼침으로써 페르시아는 다문화 다종교가 허용되는 다채롭고 자유로운 문화를 가진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페르시아는 만화 또는 영화 300에서 그렇게 야만적으로 묘사될 만한 나라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후대의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의 후계임을 자처할 정도로 자유롭고 문화,경제적으로 발전된 제국이었다. 아마도 영화를 수입해 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국가와 몇 아시아 국가의 사람들, 즉 중동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에서는 어차피 잘 모를테니, 페르시아를 대충 악마화시켜 주인공들이 반드시 죽여야할 대상으로 만들어 관객들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한 고안이었을 것이다. 

 

300의 주요 소재인 테르모필레 전투는 어땠을까? BC480년 여름. 레오니다스 1세가 이끄는 군대가 페르시아 군대를 7일 동안 막으면서 매우 큰 피해를 주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스파르타 정규군 300명만으로 전투를 치루었다는 것은 얼토당토 않은과장이며 실제로는 스파르타 정규군 300명 포함 총 7000명의 그리스 연합군으로 구성된 부대를 레오니다스 1세가 이끌었다. 이들은 200만명[각주:3]이 넘는 페르시아 군대를 맞아 영웅적인 방어전을 펼쳤으나 지역주민인 그리스인 에피알테스가 뒷 길을 페르시아 군에게 알리는 바람에 포위를 당하는 위기를 맞게 된다. 레오니다스 왕은 부대 대부분을 철수시키고 약 1500명 정도를 남겨 방어하였으나 결국 대부분 전사한다. 페르시아 군의 피해는 2만명에 이를 정도였으니 이 전투가 후대에 영웅담으로 회자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페르시아 군은 파죽지세로 그리스 지역을 점령해 갔으나 그 해 말 아테네 장군 테미스토클레스와의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하면서 크세르크세스 1세는 주력군을 페르시아로 철수시키게 된다.

 

현재의 그리스 테르모필레(Thermopylae) 지역

 

 

Frank Miller가 이런 역사를 모르고 의도적으로 과장 및 왜곡을 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300인의 전사와 레오니다스 왕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테르모필레 전투를 소재로한 Fiction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영화 300 자체는 꽤 재밌는 영화이다. 극장에서 놓친 것이 많이 아쉬울 정도로 사운드가 훌륭하며 시각적으로도 즐겁다. 다만 제라드 버틀러가 연기한 레오니다스 왕은 헐리우드식 농담따먹기 언변과 미국식 선동으로 포장된 인물이어서 다소 재수없는 캐릭터였는데 스파르타의 유명한 라코니아 어법[각주:4]을 잘 보여주었다면 더 재밌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300 (2007)

300 
7.7
감독
잭 스나이더
출연
제라드 버틀러, 레나 헤디, 도미닉 웨스트, 데이빗 웬헴, 빈센트 레간
정보
액션, 전쟁 | 미국 | 116 분 | 2007-03-14
 

 

 

  1. 국적 불명의 발음이지만 그냥 쓰기로 한다. [본문으로]
  2. 2013년 개봉예정인 영화 "크세르크세스"에서는 페르시아가 어떻게 묘사될지 기대해 본다. 감독은 300의 감독인 Zack Snyder. 원작은 역시 Frank Miller. [본문으로]
  3.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기록된 수치이나 현대 역사학자들은 너무 과장된 수라고 하며 실제 20만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리스 연합군보다 수가 더 적었다고 하는 의견도 있다. [본문으로]
  4. 단적인 예. 마케도니아의 필립페 1세가 그리스 침공시에 스파르타에 최후 통첩을 보냈다. "만약 내가 라코니아로 진입한다면, 나는 스파르타를 쓰러뜨릴 것이다." 이에 대한 스파르타의 대답은 "만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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