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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을 노려라 - 건버스터(1989)' DVD의 필름 가이드 본문

애니 만화

'톱을 노려라 - 건버스터(1989)' DVD의 필름 가이드

snowfrolic 2010. 11. 28. 01:16


톱을 노려라 - 건버스터(1989)의 DVD 북클릿에 실린 필름 가이드 글. 내용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줄거리
서기 2015년. 우주를 여행 중이던 “룩시온” 함대가 수수께끼의 우주괴물들의 습격을 받아 전멸한다. 그리고 15년 후, 우주괴물들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우주 파일럿 양성학교 ‘오키나와 우주여고’가 설립된다. 그리고 그 학생들 중에는 “룩시온” 함장의 딸 “타카야 노리코”가 있었다. “나도 언젠가 우주 파일럿이 되어 아빠가 있던 우주로 갈 것이다!”라고 다짐하는 그녀.

노리코는 선배의 격려와 새로 부임한 코치의 엄격한 지도 아래 나날이 재능을 발휘해간다. 최고의 파일럿이 되기 위해, 그리고 지구를 지키기 위해 힘겨운 싸움에 뛰어들게 되는데….

각화 제목 (각 30분)
1화 “충격! 나와 언니가 파일럿!?”
2화 “대담! 천재소녀의 도전”
3화 “첫 설레임, 첫 출격”
4화 “발진!! 미완의 최종병기”
5화 “제발!! 사랑에 시간을!”
6화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



FILM GUIDE OF GUNBUSTER VOL.1

제 1화 <충격! 나와 언니가 파일럿!?>
제 2화 <대담! 천재소녀의 도전!!>


톱을 향한 서비스 정신
글 : 히카와 류스케

안노 감독, 데뷔작의 서비스 정신

<톱을 노려라!>의 감독은 바로 안노 히데아키. 훗날 <신세기 에반게리온>(1995)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의 감독 데뷔작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TV 예고편에서 “서비스, 서비스”라는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에바는 작가성이 강한 문제작이라는 평이 많았으나, 사실 그 본질은 ‘서비스’가 아니었을까. 서비스 정신이야말로 안노 감독 특유의 스타일이라는 사실은 이 작품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작품의 밑바닥에는 오타쿠적인 취향과 오타쿠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뜨거운 열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다. 게다가 그것은 결코 평범한 수준이 아니다. 과거에 영향을 받았던 여러 작품들에 대한 ‘자신에 찬 응답’으로서, 그에 못지않은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자 하는 궁극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제작을 맡은 가이낙스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1987)를 만들기 위해 설립된 신세대 애니메이션 제작사. 자신들만의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TV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젊은 세대가 결성한 가이낙스. 그들이 비디오 애니메이션을 깎아내리는 대표적인 말이 된 ‘로봇과 미소녀’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비디오 애니메이션계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당시 가이낙스 사장이자 프로듀서를 겸한 오카다 토시오는 “이것은 작품이 아니라 상품이다”라고 확실히 정의를 내리고 있다. 분명 <톱을 노려라!>는 다른 애니메이션이나 특촬영화에서 인용한 패러디와 오마주가 가득한 오타쿠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그러한 요소를 어설프게 보이지 않도록 복합적으로 곁들임으로써 깊이를 얻게 되었다. 또한 장난이 지나친 게 아닌가 싶은 즈음에 ‘이게 바로 진정한 SF야’라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드는 멋진 세계관을 한 작품 속에 집어넣었다. 관객은 마치 탁구공마냥 갖가지 소품들과 감정의 동요 사이에서 우왕좌왕할 뿐이다. 이렇게 희롱당한 감정은 당시 평범한 애니메이션에 마비돼 있었던 애니메이션 팬들의 감성을 뒤흔들면서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처음 1, 2화의 흐름

발표 당시(1989년), 이 작품의 제목을 듣고 웃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다. 바로 할리우드 영화 <탑건>과 순정만화 <에이스를 노려라!>의 제목에서 따온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혀 그럴싸한 느낌을 주지 않는 제목이 오히려 미지의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경계심을 풀어놓은 한편 은근한 기대감을 가지게 하였다.

제 1화 <충격! 나와 언니가 파일럿!?>은 그러한 관객들의 기대에 정확히 부응했다. 오타쿠적인 세세한 측면을 만족시키는 서비스 정신을 재빨리 발휘한 것이다. 우선 <에이스를 노려라!>의 인트로 부분을 고스란히 베낀 전개를 보여준다. 원래 <에이스를 노려라!>의 앞부분은 고전적인 순정만화의 요소를 집대성했다고 볼 수 있다. <톱을 노려라!>는 그것을 보다 희화화시켜, 순진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 타카야 노리코와 천재성을 지닌 ‘언니’를 배치한다. 하지만 ‘천재성은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라는 관객들의 뻔한 예상에 대해, 언니가 철로 된 신발을 신고 특별훈련을 하는 엉뚱한 모습으로 응답한다. 물론 로봇 조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훈련이다. 또한 근력이 필요 없는 로봇의 훈련 방식이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 그리고 기계체조인 점은 더더욱 알 수 없는 부분들이다. 개그의 파괴성은 단발성이 아닌 집요하게 파고드는 점에 있는 것이다.

제 2화 <대담! 천재소녀의 등장!!>에서는 1화에서 보여준 코믹 패러디에 무장해제 당한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감동을 종반부에 배치해 놓는다. 주인공 타카야 노리코가 지닌 마음의 상처인 동시에, ‘톱’을 목표로 하게 만든 아버지의 죽음. 그가 함장으로 탑승하고 있던 우주전함이 우라시마 효과에 의해, 전멸 직후의 상태를 유지한 채 귀환해 온 것이다.

제지를 뿌리치고 아버지를 구출하려 한 노리코가 본 것은…. 이 장면에서 부녀지간의 정을 세차게 가로막는 과학의 비정함과 무상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럼으로 인해 노리코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부각된다. 이러한 대비야말로 감동의 원천인 것이다.

제 1화와 제 2화의 절묘하게 균형 잡힌 대비가 <톱을 노려라!>라는 작품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제시해준다. 과연 그 뒤에 오타쿠적인 재치와 SF적인 감동이 어떤 식으로 결실을 맺을 것인가. 그것은 뒤편을 보고 직접 확인하시기 바란다.




FILM GUIDE OF GUNBUSTER VOL.2

제 3화 <첫 설레임, 첫 출격>
제 4화 <발진!! 미완의 최종병기!>

오타쿠적인 자기 확신과 감동의 원천
글 : 히카와 류스케

오타쿠적 설정의 깊이가 가져다주는 응축감

<톱을 노려라!>에 가득한 오타쿠적 설정은 중요한 흥미 요소이다. 일반적인 ‘패러디’와 차별화되는 점은 톱에서 다뤄지는 재료들의 종류와 요리방법이 비할 데 없이 ‘깊이‘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스태프들이 자신들의 피와 살이 됐다고 할 정도로 깊은 애정이 작품에 큰 힘이 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에서 인용한 것은 포스터로 붙어있던 ‘우주방사선병 박멸주간’(오키타 함장이 걸린 불치병 이름)과, 가미라스의 함대처럼 2열로 포위진형을 짠 우주괴수들의 모습, 함대전 때의 점호에 이르기까지, 도처에 인용이 산재되어 있다. 특촬에서 인용한 부분도 상당하다. 함재기 '코스모어택커V'의 조립 장면은 <마이티잭>의 ‘엑조스카우트‘와 ’피브리다‘의 합체한 것이고, 워프항법의 변환 스위치는 <모스라 대 고지라>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오리지널 작품의 정수를 해치지 않고, 하나 같이 멋진 이미지로 작품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안노 감독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특정 장르에만 편향된 사람들이 아니다. 1970년 만국박람회 전후에 소년기를 보낸 ‘오타쿠 1세대’의 ‘만물박사’적인 성격이 강한 이들이다. SF의 미래지향적인 멋에 흠뻑 빠졌던 세대로서, 특촬이든 애니메이션이든 외국영화든, 장난감이든 닥치는 대로 섭렵했던 오타쿠 감각의 긍정적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생각해보면, 이 작품이 발매되던 당시에는 마니악한 작품으로 취급되기도 했지만, 21세기인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다. 90년대가 지나면서 LD박스나 피규어, 복각 코믹스가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고, 오타쿠 책도 잔뜩 출판되었다. 오타쿠들에 대한 인식도 좋아져서, 30년간 압축됐던 문화가 이제야 꽃피우는 상황이다. 우리들은 <톱을 노려라!>로 대표되는 현실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작품은 오타쿠 문화를 긍정적으로 이끈 선두(톱)라고 자신할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향해

제 3화 <첫 설레임, 첫 출격>의 메인 테마는 오타쿠적인 가벼움과는 대조적인 ‘죽음이 가져다주는 무게’이다. 노리코는 가벼운 마음으로 스미스 토렌과 팀을 이루지만, 너무 빨라서 보이지도 않는 적들 앞에서 무력한 모습을 보인다. 이 전투에서 스미스는 갑작스럽게 ‘사라져버린다’. 비명도 ‘내 몫까지 싸워줘!’하는 식의 유언도 없는 ‘절대적인 부재’만이 차갑게 노리코를 맞이한다. 무기질적인 죽음의 확인은 피와 내장을 보여주는 것보다도 수천 배나 무섭고 현실적이다.

2화 마지막 부분에서와 마찬가지로 SF적인 멋이 강조되면 강조될수록 노리코가… 더 나아가 안노 감독이 남다른 감성으로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미스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담력시험’ ‘간접키스’와 같은 학창시절의 보편적이면서도 가볍고 달콤한 추억과 연결된 점이 그것을 증명한다. 애니메이션의 ‘참맛’은 바로 이러한 부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제 4화 <발진!! 미완의 최종병기!>는 <톱을 노려라!>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클라이맥스다. 죽음에 직면하여 슬픔과 두려움에 휩싸인 노리코. 그녀는 함대와 동료들의 절대적인 위기 앞에서, 움츠려들었던 마음을 떨쳐버리고 자신을 되찾아 분연히 일어선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싸움을 통해 얻게 된 것이다. 노리코가 선택한 방법은 미완의 최종병기… 거대로봇 건버스터의 출격이다. 목숨을 건 희생 공격으로 우주괴수를 물리친 건버스터의 전법은, 죽음을 통해 생명을 자각한 노리코의 마음과 맞닿아 있다.

이 결전의 고조감은 관객을 감동의 정점(톱)으로 이끈다. 하지만 그것은 영상의 화려함에서 오는 감동이 아니다. 어떤 삶을 살아가든지 간에, 친구가 있고, 사랑하는 것이 있고, 발전적으로 살아간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자신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어떠한 장애라도 극복할 수 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선 노리코의 긍정적인 자세가, 스태프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려낸 영상과 어우러져 압도적인 기운을 발산한다. 바로 이점이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에 동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긍정적인 면이 있기 때문이다. 자칫 자포자기하기 쉬운 오타쿠들의 가슴 속에도 뜨거운 감동의 원천이 존재한다… 오타쿠적인 과정을 통해 그것을 재확인시킨 것이 바로 이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점이다.

<톱을 노려라!>는 4화에서 일단락된다. 그리고 이렇게 조성된 분위기는 진정한 완결편, 5화와 6화로 이어지면서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FILM GUIDE OF GUNBUSTER VOL.3

제 5화 <제발!! 사랑에 시간을!>
최종화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서…>

‘톱’의 감동은 시공을 뛰어넘는다
글: 히카와 류스케

오타쿠의 가슴에 숨겨진 ‘아픔’

훌륭한 작품이 주는 감동은 시공을 뛰어넘는다. 거기에 뜨거운 열정과 혼이 담겨있다면…. <톱을 노려라!>의 마지막 두 편은 바로 그러한 작품이다. 제 5화 <제발!! 사랑에 시간을!>은 카즈미와 노리코, 둘 만의 졸업식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노리코는 과거의 동급생 키미코와 재회한다. 그녀의 나이는 27세, 딸까지 있는 주부가 되어있었다…. 우라시마 효과로 인해, 아광속 우주에서 지낸 노리코에게는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구에선 10년 이상의 시간차가 발생한 것이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17세인 노리코와 자식의 미래를 걱정하는 나이가 된 키미코. 여기서 노리코가 느낀 거리감은, 일정 연령이 된 오타쿠가 옛 친구와 만나, 현실적이 된 그들의 모습을 보고서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는 감정… 즉 ‘아픔’과도 같다.


노리코를 골수 오타쿠로 설정한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자신이 믿고 가치를 느끼는 것에 매달린다는 것은, 일반적인 생활과 일상을 포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톱을 노려라!>의 마지막 두 화는 오타쿠가 안고 있는 ‘아픔’을 파고든다.

제 5화는 러브스토리와 로봇 액션 스펙터클을 또 다른 ‘우라시마 효과’로 교차시켜 전개해나간다. 오오타 코치를 사랑하는 카즈미. 하지만 코치는 우주방사선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카즈미의 출격은 그와 함께 보내야 할 시간의 소멸,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절망을 의미한다. 전의를 상실하게 된 카즈미. 하지만 스미스의 죽음을 극복한 노리코는 ‘언니’의 이름을 처음으로 부르면서 대등한 파트너로서 질책한다.

둘의 마음이 하나가 되고, 두 대의 버스터 머신이 합체! 전장 200미터에 달하는 합체 거대 로봇 건버스터의 진가가 드디어 발휘된다. 히다카 노리코(성우)의 힘찬 절규와 눈부신 연출, 오타쿠적인 요소가 혼연일체가 되고, 세포 깊숙이 스며든 오타쿠적인 감동의 심리타점을 자극시키면서, 엄청난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전투가 펼쳐진다.

1만 2천년 후에 본 것

최종화 <끝없는 시간의 흐름 끝에…>에서 멸망의 위험에 처한 인류는 생존을 걸고, 은하계 중심핵과 함께 모든 우주괴수들을 파괴할 ‘카르네아데스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각각의 전투는 장엄한 음악과 연필 터치를 살린 선화(線畵)를 중심으로 묘사되어, 오타쿠적인 냄새를 지우고 있다. 한번 철저하게 보여준 이상 또 다시 되풀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라스트신의 감동에 방해요인이 될 거라는 냉철한 계산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색을 없앤 화이트 스크린 위를 차지한 것은, 목성을 압축해 내장한 ‘버스터 머신 3호‘로 대표되는 SF 영상의 ’장대함‘이다. 또한 라스트신에서는 우라시마 효과로 인한 갈등이 1만 2천년이라는 ’장대함‘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것이 암시하는 것은 ‘삶의 의지’가 갖는 장대함이다. 인간의 왜소한 신체에 내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큰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믿고 타인을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려하는 의지는, 과연 은하라는 까마득한 공간, 1만년이라는 엄청난 시간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장대함이 바로 작품 전체의 진정한 정점이 되어, 다양한 묘사와 함께 라스트신을 향해 수렴해가는 구성… 그것이 바로 <톱을 노려라!> 최대의 볼거리다.

노리코, 카즈미 콤비가 뛰어넘어야 할 거대한 운명, 시공간의 사이즈가 크면 클수록 감동의 깊이도 더욱 커진다. 이것은 SF만이 묘사할 수 있는 장대한 스케일이다. 또한 오타쿠적인 그릇을 통해 모든 것을 담아낸 거대한 비주얼로 그 감동을 그려냈다는 점이 <톱을 노려라!>가 가진 특유의 묘미이다.

라스트신에는 흑백 묘사를 감동으로 바꾸는 또 하나의 커다란 장치가 있다. 그 순간, 오타쿠라면 일종의 ‘구원’을 보았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의 열정을 불태울 것이 있고, 믿는 것이 있으며, 행동으로 옮겨간다면 성과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호응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틀림없이…. 그리고 그것은 시간과 공간마저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인식을 통해 감동과 구원을 얻는 것이다. 동서고금, SF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특촬을 통해, 감동의 농축원액에 흠뻑 취하며 성장해온 오타쿠이자, 감동을 주식으로 삼아 행동하고 투쟁해온 사람이라면, 거기서 긍정적인 자신의 발자취를 재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톱을 노려라!>가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결코 거짓된 것이 아니다. 우선 그 점을 인정했으면 좋겠다. 거기서부터 미래가 시작되며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이러한 재확인이 바로 21세기… ‘톱의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십수 년이라는 시간을 넘어서까지 이 작품을 다시 보는 커다란 의미인 것이다.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
채널/시간 애니박스 월,화 저녁 9시
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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