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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야구를 사랑하는 사나이. 로저 클레멘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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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야구를 사랑하는 사나이. 로저 클레멘스

snowfrolic 2004. 12. 23. 22:58




네이버 MLB 토론장에 올라온 jihanjjangn님의 글입니다. 너무 글을 잘 쓰셔서 두고 읽고 싶은 마음에 퍼왔습니다.



제목: 오늘도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제가 좋아하는 로저클레멘스

1. 진정으로 야구를 사랑하는 사나이

역사상 가장 화려한 투수중 한명인 로저클레멘스... 물론 투고타저시대에서 빛났던 투수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640경기에 나와 328승을 한 선수...(출전 경기의 절반이 넘는 숫자를 승으로 기록해주었다) 삼진은 단순한 ’아웃카운트 하나’가 아니라 그의 야구인생의 전부다. 그가 얼마나 야구를 사랑하는 지는 4명의 아들들에게 모두 삼진(struck out)의 이니셜인 ’K’로 시작되는 이름(코비, 코리, 카시, 코디)을 지어준 것으로 알수있다.

2. 직구를 사랑하는 파워피쳐의 전형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놀런라이언이었다. 파워피쳐의 전형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위력적으로 생각한 공은 젊은 시절부터 직구라고 생각했다. 월터존슨을 비롯해 레프티그로브, 보브펠러, 놀런라이언 등이 슈퍼스타가 된 것도 가공할 스피드를 가진 직구 덕분이다.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투수들도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위력을 바탕으로 탄생하는 셈이다.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의 로저클레멘스가 당대 최고의 파워피쳐로 군림하고 있던 1980년대 중반, 뉴욕메츠에서 거물신인이 나타났다. 클레멘스가 만약에 대학에 가지 않았더라면, 뉴욕메츠에서 역대 최강의 원투펀치 로저클레멘스, 거물신인이라는 콤비가 만들어질뻔 했다. 그 거물 신인은 초대 외계인중 하나로 불려지는 선수다. 바로 드와이트구든이다! 드와이트구든은 삼진을 무더기로 빼앗으며 <닥터K>라는 별명을 얻고 있었다. 클레멘스는 1986년 4월 스무 개(아래서 다시 언급할게요)의 삼진을 뺏어내 9이닝 게임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웠다.
클레멘스는 1986년 애스트로돔에서 펼쳐진 올스타전에 출전, 구든을 상대로 배팅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양리그의 선발투수였다. 1986시즌부터 확실한 두각을 나타내며 14연승을 거두는 등 시즌 초반 엄청난 기세를 올리면서 이게임을 맞을 무렵에는 15승2패(예전에 페드로한테 30승을 기대한적이 있었는데 클레멘스한테도 팬들은 그당시 30승을 기대했다.)를 거두고 있었다.(시즌 최종성적은 24승4패) 1985년 24승4패를 따냈던 구든은 이 시점에서 10승 4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구든은 클레멘스에게 직구를 던졌다. 구든의 직구를 보고 클레멘스는 포수 개리카터를 돌아보면 다음과 같이 물어봤다.
“지금 저 친구가 던진 공이 제가 던지는 것만큼 빠릅니까?”
이는 곧 “나도 저만큼 빠른 공을 던지는가요? 라는 물음이었다.
개리카터의 대답은 간단했다.
“Of course."
그러자 클레멘스는 혼자 생각했다고 한다. 저토록 빠른 공은 인간으로서 도저히 쳐낼 수가 없다. 타석에서 빠른 직구의 위력을 스스로 체험해 본 그는 그 뒤 정교한 투구 배합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빠른 직구를 최대한 활용했다. 그것은 지금으로 볼때 현명한 결정이었다.

3. 올스타전 MVP와 뒷이야기

드와이트구든의 직구를 보기전부터 로저클레멘스는 자기의 직구를 올스타선수들에게 시험해보고 싶었나보다. 갑자기 3회에 포수에게 패스트볼을 위주로 던지겠다고 한다.
결과는 3이닝 퍼펙트... 올스타전 MVP를 따내며 이미 최고의 투수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그때를 회상하며 로저클레멘스는 말한다.
“그당시 전 항상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지요. 직구의 위력만으로도 충분히 다른 타자들을 제압할 준비가 되있었습니다. 저에게 별다른 변화구는 필요없었답니다. 그 당시 전 제 직구를 다른 선수들이 쳐낸다면 더 위력적인 직구로 승부했습니다. 그래서 300개의 삼진은 잡아본적이 없지만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제가 한가운데 직구를 던졌을때 그것을 중심에 맞히고도 저의 공에 무게에 눌릴때가 휠씬 기분이 좋았습니다.”

4. 백인들의 자존심

사실 로저클레멘스는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선수중 가장 백인들의 자존심을 대변하는 인물이다.(그당시 NBA에선 PF겸 SF로 활동하던 래리버드가 미국백인들의 자존심을 대표한 인물이었다.)
신인시절 케리우드가 한경기 20개의 삼진을 잡아내 엄청난 포퍼먼스를 일으켰다. 제2의 로켓맨으로 성장할 투수라는 찬사를 받으며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지금은 비록 기대보다는 덜 위력을 보여주지만...
1986년 4월30일은 로켓맨이 역사를 탈삼진의 역사를 다시 쓴 날이다. 아메리칸리그 최다기록인 8타자 연속 탈삼진 및 한경기 20개 탈삼진... 시애틀을 희생양으로 몰아세웠다. 그 후 또 한번의 20개 탈삼진을 기록하며 역사상 3번중 2번을 클레멘스가 이뤄냈다.
1986년 로저클레멘스는 24승4패 방어율 2.48 탈삼진 238개의 눈부신 성적으로 사이영상과 리그 MVP를 석권했다.
당시 행크 애런이 이렇게 말했다.
“타자는 거의 모든 경기에 나와 4-5경기마다 나오는 투수보다 공헌이 큰데도 불구하고 로저클레멘스가 MVP를 수상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건 분명 그가 백인이기 때문이다. ”
라고 그의 수상을 비난하자,
클레멘스는 이렇게 응답했다
"애런이 지금도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그의 머리통을 날려 내 가치를 증명했을 것이다"
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24세의 3년차 투수가 대선수인 행크애런과 메이저리그를 상대로 한 거침없는 선전포고를 했다.
(이와 비슷한 경우도 몇번 있었다. 페드로마르티네즈의 경우에도 이반로드리게스에게 본인의 1위표가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MVP를 뺐기자 인종차별발언을 했고, 또, 배리지토에게사이영상을 빼았길때도 페드로마르티네즈 스스로 자기가 받지못한 이유가 흑인이라서라고 해 물의를 일으켰다.)

5. 마이크피아자와의 관계

마이크 피아자와의 관계는 아주 유명하다.
여름에 셰이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메츠와 뉴욕 양키스의 인터리그 경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당시 피아자는 클레멘스만 만나면 평소보다 더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고 한다. 홈런 3개를 포함해 7안타 9타점을 올리며 클레멘스의 자존심을 긁어놓았다.
이후 클레멘스가 뿌린 강속구가 타석에 선 피아자의 헬멧을 정통으로 맞혔다. 클레멘스가 평소에도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거나 자신에게 유난히 강한 타자에게는 몸쪽 위협구를 자주 던지는 선수이기 때문에 많은 팬들은 클레멘스가 의도적으로 맞힌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수많은 팬들은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백인들의 자존심이기 때문이었다.
그 사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클레멘스는 어떤 사고의 표시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후 로저클레멘스가 마이크피아자에게 사과하기 위해 전화통화를 시도했으나 피아자가 거부했다. (또, 당시 메츠의 에이스였던 마이크햄튼이 양키스의 버니 윌리엄스와 데릭 지터에게 곧바로 보복했다. 피아자는 그 후유증으로 그해 올스타전 출전도 포기해야 했다.)
사건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해 월드시리즈에서 클레멘스가 또다시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다. 피아자의 방망이가 부러져 자신에게로 날아오자 그것을 집어들어 피아자를 향해 던져버렸다. 결국 싸움직전까지 갔으나 양주심의 만류로 그것으로 끝났다.
후에 그와 피아자가 배터리를 이룰뻔 한적이 있었다. 그 때 피아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끝난 일이다. 지금도 비록 불편하긴 하지만 직구에는 하나, 슬라이더에는 둘, 스플리트에는 손가락 흔들기를 할 것이다. 그 순간은 그를 위한 것이다”
라고 말했고, 클레멘스는
“피아자와 배터리를 이루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게임보다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나는 우리 둘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없다. 나는 메이저리그 선수다."
라며 답변했다. 하지만 둘 사이는 여전히 앙금이 있어보이는 건 사실이다.
다른 얘기지만 팬들은 위협구를 그렇게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예전에도 월터존슨의 최다사구도 있었고, 돈드리스데일 역시 빈볼로 유명했다. 샌디쿠팩스는 위협구를 던진 후, 상대방에게 기선을 제합한 후, 많은 삼진을 낚았다고 한다.(사실 쿠팩스의 위협구는 자기의 투구수를 줄이기 위해서였다는 걸 팬들도 알고 있었고 본인도 알았다. 아픈 팔땜에 위협구를 던졌다고 한다.) 또, 이 빈볼을 미국에서는 브러시백이란 표현을 쓴다. 등에 묻을 흙을 툭툭 턴다는 뜻으로 부르는데 빈볼은 타자의 타이밍을 흐트러뜨리고 다음 공에 적극적으로 덤비지 못하도록 겁을 주려는 전술적 의도가 담겨 있을 뿐이라는 의미이다.
리오듀러셔같은 감독은 팬들에게 빈볼을 지시했다고 한다. 빌헨즈라는 우완투수는 빠른 직구가 주무기였는데 머리쪽으로 바짝 붙는 빈볼을 지시하자 상대타자인 에이지는 벌렁 나자빠졌다고 한다. 그 선수를 내야 땅볼로 잡고 나머지 타자둘도 쉽게 잡아냈다.
그렇자 상대투수인 쿠스먼도 론 산토라는 클러치히터의 팔목을 정통으로 맞혔다. 그러나 게임은 아무 말썽없이 진행되었다. 그경기에 대해 듀러셔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빈볼은 저희가 먼저 자행한 것이고, 그 뒤에 상대편의 빈볼은 그냥 답변에 불과합니다. 현대 야구에서 빈볼도 하나의 전략이지요.”

6. 태업일까? 위기였을까?

아직도 그의 보스턴에서의 마지막 4년간에 대해서 태업이었을지 위기였을지 아는 사람은 별루 없다. 왜냐하면 보스턴을 떠나자마자 토론토에서 다시 엄청난 피칭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년연속 트리플크라운 피트알렉산더-레프티그로브-샌디쿠팩스이후 2년연속 트리플크라운은 역대 4번째의 대기록이었다. 비록 보스턴 시절 막판 6승2패 2.09의 성적을 올렸지만, 10승13패 3.63의 기록을 올리며 토론토가 4년간 4000만달러, 투수 최초의 1000만달러는 무리가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보기좋게 그 예상을 빗나가게 해버렸다. 그가 들고 나온 스프리트핑거드패스트볼은 정말 시즌 내내 압권이었다. SF볼과 직구로 리그를 평정해버리자 수많은 기자들이 다음과 같이 물어봤다고 한다.
“보스턴에서 마지막 4시즌은 태업이었습니까?”
로저는 역시 자신의 성격대로 말한다.
“노코멘트.”

7. 로저클레멘스가 진정으로 인정한 3명의 투수

로저클레멘스가 여지껏 살면서 정말로 인정한 투수는 3명 있었다고 한다. 바로 자신의 영원한 우상 놀런라이언과 최초의 외계인이라 불리는 드와이트구든, 그리고 페드로마르티네즈였다고 한다.
이 선수들에 대해 6번째 사이영상을 탄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놀런라이언(제법 흥분하며)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 전체를 통털어 최고의 파워피쳐입니다. 저는 그를 능가하고 싶어도 능가할 수 없습니다. 그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투수라고 하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분명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화려한 투수입니다. 그의 나이때 제가 라이언만큼 던질 수 있다면 대단한 영광입니다. 저도 그처럼 영원한 파워피쳐중 한명으로 남겠지만, 분명 저는 그를 넘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는 무언가가 특별한게 있는 투수지요.”
말을 이어서,
“구든은 참 안타까운 투수에요. 그는 분명 300승이상을 거둘만한 투수였습니다. 하지만 그당시 구든을 가진 팀들은 그가 300승을 올려줄 투수라는 건 알고 있었고, 또 그가 팔에 무리를 하지 말아야 하는 투수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의 투구폼은 무리가 있는 폼입니다. 아무리 구든이 좋은 투수였다고 하고 팀의 에이스더라도 너무 혹사시키지 말았어야 합니다.
고등학교를 막마친 고졸신인에게 그것도 19살 신인에게 200이닝이상을 그런 투구폼으로 던지게 한건 메츠팀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 제가 유일하게 지켜보는 투수가 페드로입니다. 그에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죠. 하지만 안타까운건 언젠가 그도 부상으로 은퇴할 선수가 되버릴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그도 구든처럼 될까봐 안타깝습니다. 올시즌 사이영상은 제게 아니라 그가 정상적으로 뛰어줬다면 그의 것이 되었을 겁니다.”
이런 클레멘스의 말에 절친한 친구인 앤디페팃(나이차이는 나지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건강하게 던질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능력입니다. 제가 그를 봤을때부터 그는 저의 우상이었고 미국의 많은 팬들은 로저의 그런 모습에 더욱 감동받습는다. 로저는 라이언이후 우리에게 내려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이말에 미국의 칼럼니스트 레너드쿠페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장 위대한 투수로 선정되기 위해선 장수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샌디쿠팩스만큼 가장 전성기가 화려했던 선수는 없습니다. 팔꿈치 고장으로 1966년에 겨우 서른한 살의 나이로 은퇴할때까지 쿠팩스는 단일 시즌 탈삼진 기록을 모조리 바꿔놓았고 4년사이에 세차례나 사이영상을 받았고, 5년연속 방어율 1위를 마크했고 시즌 말미에 백미의 게임을 연출하는 등 4년동안 97승 27패를 거두며 다저스를 세차례나 정상에 이끌었죠. 또, 월드시리즈 통산 0.95방어율은 정말 그가 큰 경기에 더욱 강하다고 할 수 밖에요. 하지만 1964년부터 팔꿈치가 부풀어 올랐다는 이유로 도중 하차했는데 그게 만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그 샌디쿠팩스는 자신의 운명을 예언했지요.
‘제가 역대 최우수투수로 꼽히려면 몇 년 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군요. 저는 장기간에 걸쳐 제가 이룩할 수 있는 것이 뮌지를 알고 싶습니다. 10년이나 15년동안 상승 투수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증명하기 전에는 워렌스판이나 화이티포드와 같은 위대한 투수들과 저를 비교하는 것은 보류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스판은 20년동안 저의 지금만큼 활약해주었습니다. 위대한 선수로 받아들여지려면 겨우 몇 년만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야구 생애를 통틀어 꾸준히 정상을 달려야합니다.’
얼마나 멋진말입니까! 이 말을 할때 쿠팩스의 나이 단지 28살이었고, 이미 그때 자신의 운명을 알았다고 했습니다. 단 스타덤에 오른지 3년된 투수가 자기에게 위험한 발언을 해 자기를 낮추기는 쉽지않았을 것입니다. 그만큼 장수하는 투수가 휠씬 위대하다는 것을 쿠팩스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8. 휴스턴시절과 은퇴

휴스턴으로 막판 이적... 뉴욕양키스팬들도 그가 휴스턴과 계약하지만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이번 페드로가 메츠갈때와는 사실상 비교적인 모습이다. 하지만 클레멘스도 보스턴에서 토론토로 떠날 때 보스턴 팬들은 엄청 그를 증오했다고 한다. 그래서 클레멘스도 보스턴을 싫어하고, 지금 페드로도 보스턴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있으니까 보스턴과 선수간에 마찰은 조금 있는 팀인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휴스턴 팬들도 그를 좋아했다. 그 팀이 바로 로켓맨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2003시즌이 끝나고 은퇴를 선언했지만, 그는 다시 휴스턴으로 돌아왔다.
그가 복귀하기 위해선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한다. 로저는 페팃의 설득에 의해 휴스턴으로 왔다고 사실상 어머니의 허락을 맡고 다시 다이아몬드로 돌아왔다고 한다.
클레멘스의 어머니는 병에 걸리기 전까진 메이저리그 데뷔이래로 아들의 경기를 전부 관중석에서 응원했다고 한다. 아들이 그 앤디페팃의 말을 듣고 고민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자,
“아들아. 나는 괜찮다. 팬들이 원하는 너의 그라운드로 돌아가라.”
그 말을 듣고,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돈 때문에 돌아왔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는 돈 때문에 돌아온게 아니다. 양키스에서 은퇴를 선언한 후,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2년간 2,000만달러 이상을 제시했지만, 그냥 은퇴를 선언한 그였다.
휴스턴에서 받은 돈은 500만달러... 그것도 2004시즌 100만달러만 받고 휴스턴이 자금 여유가 생길때 400만달러를 받기로 한 지불유예계약이다.
올해 그는 42살이 아닌거 같았다. 시즌 초반부터 8승1패에 1점대 방어율로 이미 사이영상을 예약한 듯이 보였다. 시즌 중반 약간 부진에 빠졌지만, 막판 힘을 내며 18승4패 2.98 218개의 탈삼진을 차지하며 7번째 사이영상을 차지하며 화려하게 은퇴를 선언했다. 이젠 더 이상 그를 못볼지도 모른다. 다아시다시피 로저는 어머니에게 자신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걸 보게 하는게 마지막 효도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병마와 싸우는 어머니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루빨리 은퇴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지금 은퇴하지않는다면 워렌스판의 기록도 넘어설 것이다. 하지만 그런 영광을 모두 뒤로 한 채 메이저리그의 또 한명의 영웅이 그렇게 은퇴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640경기중 639경기 선발출장 통산방어율3.18
자신의 한시즌 최소방어율:1.93
자신의 한시즌 최다승 24승 4패
1986년 투수MVP 24승4패 254이닝 삼진238개 2,48
자신의 최다이닝:281.2이닝
최다완봉:1988년 8번
최다완투:1987년 36경기중18번
한시즌 최다삼진:292개
통산이닝:4493이닝 통산삼진:4317개
사이영상:7번(모든 소속팀에서 수상)
한경기 탈삼진20개 2번
20승넘은선수중 3패한 역대3명의 선수:20승3패
(론기드리의 25승3패가 최고)
피트 알렉산더-레프티 그로브-샌디 쿠펙스에 이어 2년연속 트리플크라운 달성 97년,98년
117완투 46완봉
역대최고령사이영상:42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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