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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 (Oppenheimer, 2023)

snowfrolic 2023. 8. 16. 02:39

 
솔직히 말하면 나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내' 최고로 꼽지는 않는다.
재미있게 봤고 작품적으로 인정하는 영화들이 있기는 하지만.
말하자면 천재라기 보다는 고집있고 노력하는 모범생이랄까.
아이맥스와 아날로그에 대한 고집은 그만의 영화 철학으니 나쁘게 볼 일은 아닌 것이고,  
신작을 볼 때마다 스토리 연출 촬영 편집 등에서 많은 시도와 고민을 했음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의 번뜩이는 무엇가로부터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박훈정 감독을 떠올리는 것 너무 나간 거겠지)
 
오펜하이머가 그렇다. 
대체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
인물의 전기인가
매카시즘의 고발인가 (원작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는 이 내용이 강조되어 있다고 한다)
과학 윤리를 고민하는 과학자의 이야기인가
반전이 기다리는 재판/청문회의 긴장감을 전하려는 건가
핵폭발의 스펙타클을 보여주려는 건가
 
3시간이 넘도록 각잡고 진지하게 봐야하는 영화인데
저걸 다 욕심을 부리니 그 시간도 부족하고 
다른 타임라인을 번갈아 보여주는 교차 편집은
목적을 상실한 채 이야기의 이해만 어렵게 만들었다. 
그냥 영화 두 개 본 것같은 느낌.
 
교차 편집은 덩케르크와 테넷(못봤음)에서 이미 봤고
플롯은 미스 슬로운에서 본 것 같고
액션은 없는 영화고 
음향은 ... 돌비 애트모스 믹싱은 아닌데 좋다. 극중 오펜하이머의 심리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 때 요상한 장면과 함께 꽈광하는 음향이 사람을 놀래게 하는데 이게 무슨 영화적 장치로 느껴지기 보다는 이거라도 없으면 지루할까봐 잠깨우는 목적으로 넣은게 아닌가 싶더라. 하지만 핵폭발 장면의 연출이나 음향은 훌륭했다. 
특수촬영. 핵폭발 장면을 CG를 사용하지 않고 촬영했다고 하여 화제가 되었는데, 이 정도 분량이라면 스탶 괴롭히지 말고 CG 써도 되었을 것을.
연기는 출연진이 워낙에 화려하니 훌륭하다. 등장인물이 많아서 출연진과 직업을 정리해봤다. 나는 학부 때 현대물리학하고 퀀텀 케미스트리 강의를 들어서 과학자들을 대충 알고 있었는데도 헷갈리던데 이를 전혀 모르는 관객들은 뭐가 뭔지 이해가 안될 듯. 사실 모르면 모르는대로 봐도 문제는 없다.

  • 킬리언 머피 - 로버트 오펜하이머 (과학자, 이론 물리학자)
  • 에밀리 블런트 - 캐서린 오펜하이머 (과학자 아내)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 루이스 스트라우스 (미국원자력위원회 의 및 상무부 장관 후보자)
  • 맷 데이먼 -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 맨하탄 프로젝트 책임자)
  • 데인 드한 - 케네스 니콜스 (군인, 그로브스 장군 부관)
  • 플로렌스 퓨 - 진 태트록 (과학자의 내연녀이자 미국 공산주의 단체 회원)
  • 조쉬 하트넷 - 어네스트 로렌스 (과학자 동료, 실험 물리학자)
  • 케이시 애플렉 - 보리스 패쉬 (군인, 공산주의자들을 찢어죽일 것 같은 눈빛의 정보 장교)
  • 게리 올드만 -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
  • 케네스 브래너 - 닐스 보어 (과학자, 아주 유명한)
  • 매튜 모딘 - 버네버 부시 (과학연구개발국 장관)
  • 레미 말렉 - 데이비드 힐 (핵폭탄 반대 실라르드 서명 운동하는 과학자, 스트로스 청문회의 증인)
  • 제이슨 클락 - 로저 롭 (오펜하이머 청문회 검사)
  • 데이비드 다스트말치안 - 윌리엄 보든 (오펜하이머 고발 편지 작성자)
  • 톰 콘티 - 알버트 아인슈타인 (과학자, 아주아주 유명한)
  • 잭 퀘이드 - 리차드 파인만 (과학자, 아주 유명하지만 잠깐 나옴)
  • 베니 샤프디 - 에드워드 텔러 (과학자 동료, 수소폭탄 주장)

1989년 롤랑 조페의 영화 '멸망의 창조 Fat Man and Little Boy'가 생각났는데 
본지가 너무 오래되서 자세히 기억이 안나고 어떤 느낌만 남아 있는 영화다. 
이제와서 다시 볼 수도 없는 것이라 비교하기 어렵지만 
그것보다 못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닐 수 있음)
3분짜리 트레일러를 찾아보니... 오펜하이머 축약 버전이라고 해도 대충 맞을 듯.
 

 
 
영화에서는 언급만 되고 있는데,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기 직전 시점에 아인슈타인은 핵분열 반응이 무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담은 서한을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낸다. 이게 맨하탄 프로젝트의 시발이 되는 셈인데. 극중에서도 그로브스 장군이나 오펜하이머가 독일보다 먼저 원자탄을 개발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는 장면이 나오고 그들은 어떤 수준인지 어떤 접근을 하고 있는지 매우 궁금해한다. (독일의 과학자는 그 유명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하지만 웃긴 것은 실제 독일에서는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연구한 것이지 핵폭탄을 개발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독일에서의 핵폭탄 연구성과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또한 미국이 단독 개발한 것 같지은 원자탄 개발이 실은 영국이 가장 먼저 시작했고 과정에서 제조와 우라늄 확보 측면에서 캐나다와 협력했고 다음에 미국이 물량투입한 것으로 3개국이 공동/병행 개발한 셈. 어쨌든 3년간 당시 20억달러를 들인 맨하탄 프로젝트는 그 원자탄 실험을 해보기도 전에 독일이 항복을 해버리는 바람에 잠시 동력을 잃을 뻔 했는데 사실상 패배했음에도 전국민 옥쇄를 외치는 일본으로 그 타겟을 변경한다. 그것은 일본의 블러핑이었을 뿐일텐데 그런데 왜 미국은 일본에 원폭 사용을 결정했을까. 원자탄 개발을 둘러 싼 모든 것을 주도해 온 루즈벨트가 뇌출혈로 사망하고 갑자기 대통령이 된 트루먼으로서는 20억 달러나 들인 무기의 사용을 막을 명분을 찾지 못했다. 더 이상의 미군의 피해를 늘릴 수 없다는 것은 좋은 외부적 핑계가 되었고 이제 실질적 적국으로 부상하는 소련에 위력 시위도 하고 싶었다. 그럼 근처에 터트려서 겁만 줘도 될 것을 어째서 일본 본토에의 사용을  결정한 것일까. 그것은 일본 따위에게 진주만 공습을 당했다고 분노하는 인종 차별적 관점을 가진 트루먼 개인의 성향과 임박한 소련의 일본 참전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 때는 원폭이 어느 정도의 파괴력과 살상력을 가지는지 모르기도 했고, 그래서 대충 그걸 알고서 우려를 전했던 과학자들은 겁쟁이로 취급당했다. 당시 독일의 상황을 좀 더 정확히 알았다면 어땠을까 종전 후 소련의 핵개발로 시작되는 냉전은 어차피 마찬가지였을까. (로스 알라모스에는 소련 스파이가 있었고 소련은 미국의 원자탄 개발 동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2023년 8월 15일 오후 6시 30분 메가박스 영통 MX J12
돌비 애트모스, 화면비 2.20:1 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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