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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복순 (2023)

snowfrolic 2023. 4. 2. 21:30


기대했던 포인트와는 결이 달랐던 것 같다. 유사한 장르의 타 한국영화들의 전통적인 스타일과는 달리 적나라한 장면은 슬쩍 넘어가는 의외로 보수적인 연출이었고 꽤나 스타일리쉬했지만 더 힘을 줄 수도 있는데 안한 느낌이었다. 분식점을 하는 수근(김기천)의 장면이 그나마 그랬는데 이건 또 코믹하게 연출해서 웃음이 터지게 한다. 차민희 이사(이솜)의 장면은 피묻은 만년필만 보여줬고 차민규 대표(설경구)와의 마지막 결투 장면은 이걸 정통 액션 장르로 기획했다면 한 10분 분량의 아크로바틱 액션 시퀀스로 구성했어야 할 걸 그냥 일초식으로 끝내버린다. 나름 신선했고 설득력이 있어서 역시 최강 킬러네 싶었다.

서사의 또 한 축을 이루는 복순과 딸의 장면들은 일타 스캔들의 에피소드라고 해도 이상할게 없는 것인데. 닥터 스트레인지 마냥 슛 들어가기 전 머릿 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어떤 임무에든 실패한 적이 없는 세계관 최고의 킬러이지만 정작 중2 사춘기 딸과의 관계에서는 시뮬레이션 이든 실전이든 매번 패배한다. 얼마나 속이 터지는지 타겟 신이치로(황정민)이나 차대표에게 넋두리를 하기도 한다. 자신은 타고난 사이코패스에 어쩌다보니 킬러로 살아왔지만 딸만은 정상으로 키우고 싶어서 좋은 집에 살며 손수 반찬도 해서 밥도 차려주고 비싼 사립 학교에 보내고 재수없는 엄마들 모임에도 참가하는 등 바쁜 임무 중에 얼마나 노력하는데 말이다. 그러나 딸이 학폭 사건 이후 엄마에게 고백한 사실 앞에서 복순은 선뜻 딸을 감싸 안아주지 못했고 어쩌면 기회였을 그 시간을 회피해 버린다.

딸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시작하는 것은 그렇게 숨기고 싶어했던 엄마의 직업을 딸이 알게되면서 부터이다. 물론 착각이었지만 어쨌든.

한희성(구교환)과 일당들은 차이사의 제안(길복순에 대한 excommunicado)을 듣고 이 영화 최고의 액션 시퀀스를 펼친 뒤 전원 그녀에게 죽임당하는데. 한희성은 그녀의 내연남이었으며 복순의 칼에 가슴을 찔리며 내가 정말 좋아했던 거 알죠라는 대사를 치고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려하다 간다. 좋아했던 사이는 맞지만 자기가 찔리지 않았으면 복순을 죽였을거면서 도대체 저게 무슨 말인가 이 둘은 무슨 관계인가 싶은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라 이 영화에는 저렇게 행동할 수 있다고?싶은게 여러군데 있고 여기서의 인간 관계나 행위의 이유라는건 말이 안되는게 있는데. 그런데 이 엄마와 사춘기 딸 사이의 관계라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무력치와 상관 없이 자신은 복순을 죽일 수 없음을 직감한 차대표는 그녀가 가장 고통스러워할 무딘 칼을 고안한다. 복순이 차대표를 죽이는 장면을 딸이 목격하도록 만드는 것. 엄마로서의 가장 크고 간절한 소망을 산산히 깨버릴 그 상황에 기겁한 그녀는 하느님 제발을 부르짖으며 G바겐을 몰아 딸에게 달려간다. 그리고 딸과 마주하는 마지막 장면.

나는 변성현 감독이 언젠가 이 장면을 생각해내고 나머지 시나리오를 쓴게 아닌가 싶다. 염원했던 길이 아닌 죽어도 보이기 싫었던 모습을 보이고 나서야 마음을 여는 딸이라니. 엄마 수고했어라니. 고통인지 안도인지 알 수 없는 길복순의 복잡한 표정과 함께.

해석이 다를 수 있지만, 나는 딸이 엄마의 살인 장면을 보고 분명치 않았던 내재된 본능을 깨달았고 엄마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길복순은 액션물인가 성장물인가?

자녀들과 격의없이 잘 지내시는 한 회사 선배 분은 퇴근하고 나면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아이들과 다 얘기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감정을 공유하고 아이들이 자기 얘기도 하고 그런다고. 부모들은 속을 알고 싶고 소통하고 싶어 자녀에게 생각과 생활을 자꾸 묻는다만 질문을 받는 입장은 아무리 부모라도 되게 불편할 수 밖에 없다. 내 얘기를 먼저하는 것이 마음을 열게하는 관계를 좋게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고. 비단 자식과의 관계에서만 그런 건 아닐 것이고. 이게 감독의 제작 의도인지 꿈보다 해몽인지 모르겠지만 뭐 그렇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호불호가 꽤 갈리는 편이나 로튼, 메타 등 해외평에서는 꽤 좋은 반응을 받고 있는데 단순히 액션 장르로서보다는 영화가 가진 이런 관점이 그들에게 신선했던게 아닌가 싶다.

2023.4.1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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