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ogie's Blog

‘천녀유혼’ 철저 대분석 (倩女幽魂, 1987) 본문

Movies/2010

‘천녀유혼’ 철저 대분석 (倩女幽魂, 1987)

snowfrolic 2010. 4. 11. 03:51

지금은 절판된 영화잡지 로드쇼1989년 5월호에 실린 천녀유혼 특집 기사이다. 일부 내용이 어색할 수 있으나 1989년 당시 기준으로 생각하면서 읽으면 된다.



‘천녀유혼’ 철저 대해부



최첨단 SFX, 단 한번도 상상할 수 없었던 로맨티시즘, 화려한 동양의 미술과 환타스틱한 중국 귀신들의 세계. 이제 전설적인 걸작이 된 ‘천녀유혼’의 평가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미 세계 18개 영화제에서 수상하거나 초대되었으며 까다로운 영화 팬 들의 도시로 유명한 파리에서 88년 12월 28일, 편집광적인 무비 마니아들의 도시 동경에서 89년 1월 14일에 개봉되어 이제 세계적인 영화가 되었다.

‘천녀유혼’의 최초의 아이디어는 홍콩 뉴웨이브의 기수 서극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1986년 ‘영웅본색’으로 ‘홍콩느와르’라는 새로운 장르를 완성한 서극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몰두해 있었다. 1766년에 쓰여진 중국 청조시대의 괴담집 요제지이(聊齋誌異)에 실려있는 이야기중의 섭소천(聶少倩)을 영화화할 계획이었다. 그것도 지금까지 아무도 생각해보지 못한 방법으로 이 영화를 완성해볼 생각이었다.

이 에피소드는 이미 1960년에 홍콩에서 이한상 감독(‘소림사’, ’서태후’로 알려진 홍콩영화의 제2세대)에 의해 만들어진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제목도 같은 제목인 ‘천녀유혼’. 그러나 ‘영웅본색’도 이미 60년대 홍콩 바이올런스 무비를 재영화화 시킨 점을 생각한다면 리메이크는 문제시 되지 않았다.

감독은 정소동으로 결정되었다. 그는 이미 주윤발 주연의 ‘기연출사’로 85년 세계 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은 신예. 원래는 무술지도 감독으로 출발하여 감독이 되었다, 그는 무술 액션과 SFX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보기 드문 감독이다. 이를테면 ‘공작왕’이 남인재 감독처럼 SFX에 능하면 액션 연출이 떨어지고, 대부분의 홍콩 감독들처럼 액션 연출이 훌륭하면 SFX연출이 어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소동 감독은 무술 동작의 흐름과 SFX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도사 역으로 나온 우마의 도움도 ‘천녀유혼’에서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는 70년 초반 홍콩영화의 호금전과 장철로 대표되는 전성시대에 영화를 배웠다. 그 결과 ‘용문의 결투’, ‘협녀’같은 서사극적 무술 영화와 ‘심야의 결투/금연자’, ’외팔이’로 시작하는 스워드 필름을 80년대에 부활시킬 수 있었다.

바로 ‘천녀유혼’은 홍콩영화의 황금시대로 알려진 70년대 초반의 영화미학을 SFX로 새로이 부활시킨 것이다. 거기엔 노스탈지아와 로맨티시즘, 슬픔과 환희, 바이올런스와 엑스터시, Lyricism과 Belle Époque가 함께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2편, 3편이 만들어지겠지만 바로 여기서 보여준 파워풀한 에너지와 셈세한 정감이 부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다.




Staff & Cast
감독 : 정소동(Ching Siu-Tung)
제작 : 서극(Tsui Hark)
각본 : 원계지(Yuen Gai Chi)
촬영 : 반항생(Hang-Sang Poon), 이가고(Sander Lee), 유만당(Tom Lau), 황영웅(Wing-Hung Wong)
미술 : 해중문(Yee Chung Man)
의상 : 진고방(Shirley Chan)
음악 : 대악민(Romeo Diaz), 황점(James Wong)
주제가 : 장국영(Leslie Cheung) ‘천녀유혼’
출연 : 영채신 – 장국영(Leslie Cheung), 섭소천 – 왕조현(Joey Wang), 연적하 – 우마(Wu Ma)
시네마시티 1987년 제작. 35mm Color. 상영시간 1시간 33분 40초
국내 개봉 1987년 12월 25일. 아세아 극장. 국내판은 1시간 28분. 검열부분은 나무귀신과 도사가 격전을 벌이는 장면에서 6컷, 영채신이 섭소천과 키스를 하는 장면 2컷, 영채신이 요괴에게 위협을 받다가 도사에게 도움을 받는 장면 3컷, 그리고 환상적인 지옥에서의 대격전 장면에서 12컷이 잘려나갔음.


수상

제16회 아보리아츠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제20회 시트베스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제17회 파이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제4회 동경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투표 인기 넘버원 베스트 대상

제12회 홍콩영화 금상 최우수 미술감독상, 최우수 음악상, 최우수 주제가상



서극(徐克)

방육평, 허안화와 함께 80년대 홍콩 뉴 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 겸 기획자. 1970년 텍사스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뉴욕에서 실험영화 작업을 했다. 77년 홍콩에 돌아와 TV 방송국에서 2년간 일을 했다. 79년 환상적인 마카로니 홍콩 스워드 필름 이라는 격찬을 받은 ‘나비살인’으로 성공적인 데뷰를 하였다. 이어 80년에는 ‘불장난 하지마라’로 홍콩 뉴웨이브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82년 홍콩 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와 첨단 SFX를 총동원한 신선들의 판타스틱한 스펙터클 무술영화 ‘촉산:마법의 산으로부터 온 전사들’로 그 절정을 이루었다. 그 후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문제를 새롭게 해석한 비극적인 코미디 ‘상하이 블루스’로 런던영화제와 칸 페스티발에서 크게 주목받았고, ‘북경 오페라 블루스’는 87년 베를린 영화제에 초대되었다. 이 시기에 시네마시티의 기획자로도 활약하여 ‘영웅본색’,’영웅본색2’의 시나리오와 프로듀서를 담당했으며, ‘천녀유혼’도 그의 아이디어이다. 88년 ‘대행동’과 ‘서울행’으로 다시 일급 엔터테이너로서의 재능을 확인시켰고, 지금 ‘영웅본색3’와 ‘천녀유혼2’로 다시 그의 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Screen Information


‘천녀유혼’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아마도 중국식 목욕통에서의 키스 신일 것이다. 화려한 아이디어와 경이적인 마술의 만남. 장국영은 왕조현의 ‘환상적인 누드’를 보았을 것인가? 장국영의 대답은 미소와 함께 “No!”였다. “그 장면에서 그녀는 등이 깊이 파인 수영복을 입고 있었어요. 결국에는 아무도 그녀의 beauty를 볼 수 없었답니다.”

 


 

‘천녀유혼’ 특수 촬영의 비밀과 미학


1987년 7월, 홍콩 영화계는 기대와 불안 속에서 술렁거리고 있었다. 극비리에 촬영 중이던 시네마시티의 비밀 프로젝트가 드디어 개봉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룡의 신작도 이 영황와 라이벌 프리미어 시사회를 피하기 위해 개봉을 늦추고 있었다. 이름하여 ‘중국 귀신 이야기’. 우리에게는 ‘천녀유혼’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개봉 즉시 전광석화와 같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으며, 시사회에서는 성룡도 기립 박수를 보냈다. 홍콩 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고 선언한 80년대의 천재 서극의 꿈은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서극은 홍콩 영화를 새롭게 만들기 위해서 82년 ‘촉산’을 전혀 다르게 완성시켰다. 기존 시스템의 한계를 절감한 그는 그 영화를 위해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SFX에 참여한 특수 촬영팀을 초청하였다. 여기서 수많은 전투씬을 만들어내면서 서극은 최첨단 헐리우드 테크놀로지를 배울 수 있었다.


‘촉산’은 경이적인 판타지와 화려한 imagination으로 기존 홍콩 영화의 한계를 단숨에 뛰어 넘었으나, 거기엔 수많은 약점도 있었다. 우선 홍콩 영화는 헐리우드 영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한편의 영화가 주는 미의식이 너무도 낯설었던 셈이다.


서극은 이 점을 깊이 반성하고 시네마시티 영화사 내의 자신의 프로덕션인 ‘전영공작실’에 ‘시네펙스 워크샵’을 세웠다. 이 곳은 SFX만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특수촬영 전담반이었다. 특히 바이올런스 무비가 많은 홍콩에서는 절대적인 필요가 있었다. 성룡처럼 고도의 난이도를 지닌 액션을 할 수 있는 배우는 홍콩에 원표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천녀유혼’의 촬영은 철저하게 스튜디오 내부에서 진행되었다. 이 영화는 실제로 소문만큼 많은 SFX가 사용된 것은 아니다. 다만 스튜디오 내부의 조명 설계와 음악으로 관객에게 착시 현상을 불러 일으킨 장면이 더 많다.


이 영화의 주 무대가 되어있는 난약사는 실제로 똑 같은 건물을 세개로 나누어서 세웠다. 하나는 외부 촬영용, 또 하나는 내부 촬영용, 마지막은 미니어쳐이다. 한번도 난약사의 전경이 영화에서 보여진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 밤 장면으로 어두운 조명 하에 찍혀 진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 도입부의 연무사와 카 호우의 천하제일검이 되기 위한 검투 장면이 압권인데, 이 장면도 관객에게는 속임수를 쓰고 있다. 무술의 액션을 철저하게 정밀한 샷으로 분해하여 촬영했기 때문에 실제로 공중을 나르는 장면이 사람 크기의 인형과 합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촬영 속도를 정상 24프레임보다 다소 느리게 찍은 다음 다시 표준 속도로 시각 처리를 했기 때문에 더욱 빠른 속도로 느껴진다.


섭소천이 사람들을 유인하는 연못 위의 정자는 풀장에 세트 처리를 하여 촬영한 것이다. 단 이 장면은 심야에 촬영한 것이 아니라 낮에 촬영되었다. 이른 바 ‘밤을 위한 낮(Day For Night)’이라는 촬영 기법인데, 실제로 야간에 찍으면 수많은 조명을 써도 전체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화면의 입자와 얼굴 표정에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더군다나 배면이 물이기 때문에 조명이 반사될 우려도 있다.


마을 장면은 철저한 합성 촬영이다. 전경을 보여주는 장면의 배경에 있는 안개 자욱한 산은 모두 그림으로 그려진 세트이다. 실제로 마을 세트는 대단히 작게 세워졌는데 주의 깊게 보면 기본 카메라 위치를 고정으로 세우고 대부분의 사람들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찍음으로써 전체 마을의 구조가 화면에 잡히는 것을 피하고 있다. 동작이나 액션이 필요한 장면은 대부분 카메라를 낮게 자리 시켜서 전체 세트 구조가 드러나는 것을 감추고 있다. 서극은 섭소천이 유령 잔치 날 자신의 그림을 되찾아 가는 그 유명한 장면을 더 길게 찍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마을의 횡구도 길이가 짧기 때문에 포기했다고.


공중을 나르고 하늘을 가르며 벌이는 추격전과 검술전은 세트 내에서 피아노 라인으로 촬영되었다. 다만 기존 영화보다 어려운 점은 섭소천의 옷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피아노 라인에 걸리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여기서도 SFX 보다는 편집과 음악에 더 의존하고 있다. 정상적인 편집보다는 조심스러운 점프 컷을 활용했고, 이 스피드를 음악으로 늦추거나 더 빠르게 강조했다. 영화 전체를 통해서 음악이 없는 부분이 거의 없음도 미래의 SFX 감독 지망생들은 유의할 만 하다.



이 SFX 팀의 성과가 낳은 최대의 결실은 지옥에서의 장렬한 전투 장면이다. 이 장면은 홍콩 판타스틱 영화의 결정판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SFX 보다는 미술팀의 연구에 그 칭찬을 돌려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애니매이션 촬영과 스크린 프로세스인데 서극은 촉산을 찍으면서 ‘스타워즈’팀에게 배웠던 놀라운 테크놀로지를 홍콩 스타일로 바꾸어 놓았다. 지옥대왕이 지옥의 심연으로 하늘이 열리면서 사라지는 장면은 물론 스필버그의 ‘레이더스’의 마지막 성궤 장면의 배리에이션.

그러나 ‘천녀유혼’의 진짜 비밀은 그런 겉치레가 아니다. 서극은 최첨단 SFX를 중국 문화 양식 속에 융합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여기서 발견한 것은 중국의 의복 문화이다. 섭소천의 기나긴 옷깃과 짙푸른 녹색 풀밭 위를 조심스러이 스쳐 지나가는 고전적인 의상의 바람결처럼 섬세한 흔들림에는 수 천년 중국의 역사가 있다.

이 영화는 색채 감각을 그 극단까지 끌어 올리는 데 성공하였다. 연못, 목욕통, 비, 안개 그리고 무지개로 이어지는 물의 이미지를 서극은 의상의 문화와 연결시켰다. 이 의상은 공기와 바람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데, 여기서 서극은 자연과 문화, 역사와 전통의 문제를 시각화시키고 있다. 바로 그러한 것들은 이제 ‘천녀유혼’에서 감정에 의한 것들로 변모한다. 의상의 움직임은 곧 감정의 풍경화가 되는데 거기에 서극은 사랑과 증오, 로맨티시즘과 전투, Lyricism과 시니컬한 슬픔을 밀어 넣었다.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중국 귀신 이야기는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담겨진 밤의 세계를 그려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왜 밤인가? 홍콩인들에게 중국은 그저 마음속에 있는 노스탈지아의 세계인 까닭이다. 1997년에 중국으로 반환되는 홍콩의 불안과 향수, 그 좌표를 알 수 없는 미래를 서극은 귀신과의 ‘미쳐버린 사랑’ 이야기 속에서 일종의 허무주의로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SFX Technology

‘천녀유혼’의 SFX 촬영 중에서 가장 어려웠던 장면은 어느 부분이었을까? 아마도 영화전문가들이 아니라면 합성촬영과 애니메이션 촬영, 특수촬영, 스크린 프로세스, 윈도우 프로세스, 미니어쳐 촬영, 비디오 SFX 확대 촬영, 스튜디오 피아노 촬영 등을 구별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가장 난제는 장국영이 난약사에서 미이라들과 마이클 잭슨의 ‘Thriller’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촬영일수 17일. 애니메이션 촬영한 부분을 다시 확대하여 합성시켜야 했었다. 그 동작을 다시 24프레임에 맞춘 다음 장국영의 액션과 시선, 거리감을 조절시켰다. 그 외에도 요괴들이 토해내는 점액질 때문에 왕조현의 NG가 연발하였다.

 

지옥에서 벌어지는 경이의 클라이맥스는 대부분 조명과 미술, 그리고 세트에 의해서 설계되었으며 

SFX는 애니메이션 합성 촬영과 프레임 촬영이 부수적으로 사용되었다.

 

바람과 공기를 가르며 미끄러지듯 펼쳐지는 중국 의상의 세계는 전적으로 서극의 아이디어이다. 

칼리오그래픽 디자인이라는 최신 SFX가 사용되어 격찬을 모았다.

 

나무귀신은 중국의 옛날부터 내려오는 정령인데 속편에서는 요사스러운 뱀부인이 왕조현을 괴롭힐 예정.

 

'천녀유혼'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애니메이션 프레임 촬영장면





장국영(張國英)

귀공자 타입의 깔끔한 마스크와 우수에 찬 눈매. 전형적인 홍콩 미남형의 장국영은 1957년 9월 12일 홍콩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영국으로 유학. 홍콩에 돌아와서 ATV 주최 아시아 송 콘테스트에 출연하여 준우승하였다. 79년 ‘열화청춘’으로 영화에 데뷰. 이 시기에 TV와 음악계에서도 활약하였다. 팝 아티스트로서도 주목을 모았고 84년 ‘모니카’의 대히트로 일약 홍콩을 대표하는 인기가수로 성장하였다. 85년에는 동경음악제에 홍콩대표로 참가하였다. 본격적인 영화진출은 시네마시티와 계약하면서 이루어졌다. 그 첫번째 작품이 ‘영웅본색’. 그러나 여기서는 주윤발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이어 왕조현과 전설적인 걸작 ‘천녀유혼’에서 스타로 부각하여 ‘영웅본색2’에서는 좀 더 비중 있는 연기로 절찬을 모았다. 현재 ‘갈채’, ’루쥬’가 개봉되어 화제를 모으고 있으며 ‘영웅본색3’에 출연 중이다. 금년 여름을 기대할 것. 지난 88년 12월에는 20일부터 30일간 연속 콘서트를 가져 홍콩 최대의 이벤트로 꼽혔다. 마지막 질문 하나 더! 왕조현 같은 여자를 좋아하십니까? 글쎄요. 오히려 장만옥을 이상형으로 생각합니다. 레슬리의 대답이다.


왕조현(王祖賢)

1967년 7월 31일 대만에서 태어났다. 대만예술학교 재학 중에는 농구부 팀의 골게터였다. 16살에 TV방송국 스포츠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광고회사에서 스카우트되어 화장품 회사 CF걸로 데뷔하였다. 대만영화 몇편에 출연한 후 85년 학교 졸업과 함께 홍콩으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쇼 브러더즈 영화사와 계약. 주윤발과 공연한 ‘에스케이프 걸’은 이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이다. 이후 시네마시티의 ‘천녀유혼’에 출연, 일거에 홍콩영화의 새로운 대형 스타로 부각되었다. 이어 ‘강시형사’,’공처이인방’에서 다시 주윤발과 공연했으며, 80년대 홍콩영화의 천재 서극 기획의 액션 영화 ‘대행동’에서는 이수현과도 공연하였다. 최근작은 ‘대장부일기’. 농구선수로 활약한 170cm의 장신, B84 W63 H86의 몸매에 홍콩 넘버원의 각선미를 가진 90년대형 스타이다.


우마(牛馬)

외롭게 세상을 등지고 천의무봉 인생을 살아가는 도사 역의 우마는 1942년 중국 본토의 텐진에서 태어났다. 1959년에 홍콩으로 이주하여 남국실험극단 제1기로 졸업하였다. 63년에 쇼 브라더즈에 입사. 그 다음해 ‘호접배’로 데뷰하였다. 무술지도를 비롯하여 감독에도 도전, 74년 ‘전광비룡권’을 연출하였다. 왕우, 진성, 정 페이페의 영화등 다수 연출. 75년에 쇼 브라더즈를 퇴사한 후 성룡, 홍금보의 영화에서 무술지도 및 단역, 아이디어 프로듀서 등으로 모습을 보였다. ‘천녀유혼’에 이어 골든 하베스트에서 유사한 줄거리로 원표, 왕조현 주연의 ‘화중선’을 감독, 조연으로 출연했으나 역부족으로 실패하였다. 시네마시티 영화사의 무술감독으로 활동 중.










서극 인터뷰 Special Interview with Tsui Hark

 

‘천녀유혼’의 기획은 어떻게 해서 시작한 것입니까?

이 이야기는 청 왕조에 쓰여진 책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것입니다. 이 책은 귀신들의 이야기로 가득 찬 두꺼운 텍스트입니다. 중국인들이라면 어린 시절에 한번씩 들었을 법한 이야기들이죠. 정소동 감독은 자신의 전작인 '기연출사'가 흥행에 실패한 상태였어요. 그래서 내게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는가 하고 도움을 청해왔어요. 그래서 ‘천녀유혼’을 한번 만들지 않겠냐고 제안했지요. 홍콩영화에서는 최근에 로맨틱한 요소들이 모두 없어졌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당신은 정소동 감독을 잘 알고 있습니까?

우리들은 70년대 중반에 TV방송국에서 일할 때부터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는 골든하베스트 영화사에서 두 편의 영화를 찍은 후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는 다시 만나서 이야기 했습니다. 왜 우리는 함께 일할 수 없을까? 그게 1985년이었습니다. 나는 그의 성격이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천녀유혼’의 연출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당신은 ‘촉산’을 찍을 당시 그 결과에 실망했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번 ‘천녀유혼’에서는 어떤 일을 했습니까?

‘천녀유혼’의 판타지는 ‘촉산’과 전혀 다릅니다. ‘천녀유혼’에는 풍자와 야유가 있습니다. 그건 사회적이면서 인간적인 냉소주의입니다. 그 풍자를 SFX 테크닉으로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단 여기서 SFX는 좀 더 시각적으로 중국적이고 동양적인 스타일로 설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엔 몇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우선 그 효과가 너무 괴기스럽게 보이지나 않을까라는 문제점 때문에 함부로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지나치게 괴기스럽다면 로맨틱한 부분들이 손상받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로맨티시즘 영화를 원했습니다. 독일에는 그런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가 그 예입니다. ‘천녀유혼’은 바로 그 노선을 추종하고 있습니다. 로맨틱하면서도 화려한 귀신의 이야기, 거기엔 삶과 죽음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결코 공상과학 영화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많은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나무귀신으로 나온 마녀의 남/녀 양성 목소리를 결정하는 것도 많은 토의 끝에 결정되었습니다. 마녀는 그렇게 추악해 보여도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소 우스꽝스럽지만 우선은 인간의 형상을 지닌 귀신이 필요했습니다. 처음 영화가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웃기는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웃음) 그런데도 관객들은 좋아하더군요. 만일 이 영화에서 괴기스러운 면에 지나치게 중점을 두고 있는 관객이 있다면 그는 ‘천녀유혼’의 진짜 주제 곁을 그저 스쳐 지나간 셈입니다.

 

‘천녀유혼’의 SFX 촬영은 어떻게 했습니까?

솔직히 이미 다 잊어버렸습니다.(웃음) ‘천녀유혼’의 SFX의 기본은 유우머 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전체적으로 ‘촉산’보다는 SFX 면에서 뒤떨어진다고 해야겠죠.

 

‘천녀유혼’에서 중국적인 특징들이라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이 영화의 영웅주의는 아주 중국적입니다. 수염을 기른 무사의 전형에 따라 여기서도 자신의 삶에 대한 철학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는 속세를 더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을 위해 다시 전장터로 나섭니다. 이 이야기의 구조는 아주 중국적인 것입니다. 이 영화 속의 모든 인간관계는 전형적인 동양의 인물들입니다. 이 등장 인물들은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는 않지만 아주 가까이서 살고 있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배신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천녀유혼’에서 어떤 부분에 관여했습니까?

부분적으로는 연출도 직접 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야기를 구성하고, 대사를 쓰고, 장면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에 아이디어를 생각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 일이 한편의 영화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우선은 시나리오를 구성합니다. SFX는 별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전영공작실’에서 영화에 적당한 SFX를 전담해서 연구하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천녀유혼’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한 것에 대해 우리는 사실 놀라고 있습니다. 한편의 영화가 전혀 이질적인 문화에 소개될 때 어떤 평가를 받을 지를 예상하기란 항상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나를 흥분시킵니다.

 

‘천녀유혼’을 홍콩에서 만들어지는 다른 액션 영화들과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그건 아주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천녀유혼’은 전혀 다른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이건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꿈꾸는 듯한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천녀유혼’2편에 관한 계획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아마도 누구나 그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엔 제작비 문제가 있습니다. 속편에서는 나무귀신 대신에 뱀으로 변하는 괴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엄청나게 커다란 뱀으로요.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과연 그런 프로젝트가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제작비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과연 배우들을 다시 한자리에 모을 수 있겠느냐는 숙제입니다. 장국영이나 왕조현은 아주 많은 영화를 동시에 출연하고 있습니다.

 

홍콩 영화의 거장인 호금전과의 공동연출 작품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다만 기획을 할 뿐입니다. 호금전과 여류감독 허안화(지금 홍콩 뉴 웨이브의 기수. 3시간 30분의 장편 '책과 검의 로맨스'(書劒恩仇綠, 1987)로 80년대 최고의 홍콩 무술영화를 완성시킨 장본인)가 공동감독을 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중국과 홍콩, 대만 3개국에 걸쳐서 촬영될 예정입니다. 그 전에서 책 한 권이 도둑을 맞게 됩니다. 그 책에는 지배자가 될 수 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기에 대단히 소중한 물건입니다 말하자면 이 책은 권력과 관계를 맺고 있는 셈입니다. 이 책의 이름은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민요로 알려집니다. 다만 ‘세상에 대해 오만하게 미소지으리’라는 구절을 통해 우주 내에서 책과 권력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를 장대한 칼부림 속에서 다를 것입니다.
(*작성자: 위에 언급된 영화는 1990년 소오강호(笑傲江湖)로 발표된다. 감독은 언급된 호금전, 허안화 외에도 정소동, 김양화, 그리고 서극 본인까지 무려 5인이 공동 작업을 하였다.)

 

당신은 홍콩의 다른 감독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홍콩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은 결혼과 마찬가지 입니다.(웃음) 우선 생각을 함께 하고 서로의 역할을 나눕니다. 영화가 성공적이라면 모두가 기뻐하고, 그 반대라면 증오합니다. 마치 연인들 같죠.

 

그렇다면 당신은 감독과 기획을 모두하고 있으니 두 명의 신랑과 말썽을 일으키고 있는 셈이군요.

맞아요. 바로 그대로예요.(웃음) 나는 그 두 가지를 겸하는 것에 대해 항상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가끔은 서로 상충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도 생각합니다. 현재 기획중인 야심적인 프로젝트로 홍콩의 모든 영화감독이 한자리에 모여 한편의 영화를 찍을 계획도 있습니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거기에 당신도 참여할 예정입니까?

아마도 캐스팅과 기획 및 제작이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감독 조합이 필요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정말 볼만한 전쟁이 될 것입니다. 단 하나의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1백 명의 영화감독들……

 

그건 정말 거대한 영화가 되겠군요?

내 생각으로 그건 엄청나게 많은 문제를 짊어진 한 편의 영화가 될 것입니다. 서로 소리치고, 싸우고 (웃음).

 

말하자면 ‘중국 감독 이야기’가 되겠군요.

차라리 ‘중국 감독들의 중국 귀신이야기’라고 불러주십시오(웃음).

 


 

- End -




천녀유혼
감독 정소동 (1987 / 홍콩)
출연 장국영, 왕조현, 우마, 유조명
상세보기




Comments

Facebook Comments : Comment Moderation To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