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The Glance of Music, Ennio, 2021)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영화로서는 성공한 감독이지만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글쎄. 그렇다고 재미가 없거나 시간낭비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닌게. 들으면 아는 음악과 그 영화들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꽤나 감정적이 되는 장면들이 있다. 사실 초중반의 잘모르는 이탈리아 영화들이 나올 때는 좀 지루하기도 한데 셀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부터 오홍하고 정신이 번쩍 들고 1982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시작으로 미션, 언터쳐블, 시네마 천국의 명곡들이 줄줄이 나오면서부터는 그냥 이유 없이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들을 모르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이 영화 보여줘봐야 아무 소용없는 짓이다. 앞자리에 어린 두 아들 데리고 오신 아주머니 계시던데.

 

엔리오 모리코네 음악을 좋아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천재적 작곡가였는지는 몰랐다. 음악을 아는 사람들은 기절할만한 시도들을 해왔다고하는데 내가 음악에 무지하여 그런 노력을 알아봐주지 못한 점에 작곡가분께 미안한 마음이고 그걸 더 즐기지 못했어서 아쉬운 마음도 든다.

 

이탈리아/헐리웃의 유명 감독이라면 한다하는 천재들일텐데도 엔리오 모리코네가 작곡 일하는 모습을 보면 그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상상이 안가고 넘 궁금했다고. 나도 그 머릿속이 되게 궁금하고 그런 경험을 해보고 싶기도 하나... 난 천재가 아니니 구경이라도 해봤으면.

 

영화의 컨텍스트를 파악하는 능력이 감독 이상이었던 경우도 많아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는 촬영할 때 음악을 틀어놓고 연기를 했다고 하고 피아니스트의 전설에서는 아예 음악과 각본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다고 한다. 이렇게 영화에 찰떡인 영화음악을 만드는 작곡가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자기 주관도 강해서 마음에 안드는 방향으로 재수정을 요구하면 이 쓰레기 가져다 쓰쇼하고 휙 던져버리는데 그게 또 더할 나위 없는 작품이 되었다는 게 넘 웃겼다. 그것도 여러번. 그걸 보고 그는 자기 객관화가 어렵다는 걸 깨달았고 그 후로 사전에 아내 마리아에게 늘 들려준다고 한다.

 

황야의 무법자 시리즈들의 음악과 장면들이 짧게 짧게 등장하는데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온전히 한편을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말을 타고 황야를 전속력 질주하는 장면에서는 '저런 장면 때문에 서부영화가 참 좋아'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미션도 극장에서 보고 싶어졌다. 한국 개봉시 인기가 많아서 오랫동안 상영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 왜 못봤지.

 

사족. 영화 내용 중 기억에 남는 것

트럼펫 연주와 클래식 작곡을 공부했던 그는 생계 때문에 영화음악을 시작했지만 그의 천재성과 좋은 멜로디를 강조했던 모친의 말씀과 전통적 관념을 깨는 현대적 시도를 지속했던 노력 덕분에 영화음악이라는 분야가 현재의 위상을 가지게 될 수 있었다고.

 

영화음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60-70년대까지 스승 페트라시와 동료들은 그의 일을 평가절하하며 배신자 취급하였고 엔리오는 이를 악물고 인정을 받아내겠다는 각오를 했다고 한다. 결국 셀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의 성공 이후에 스승은 인정하는 편지를 그에게 보냈고 그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셀지오 레오네가 황야의 무법자의 음악을 요청하기 위해 엔리오 모리코네를 만났는데 알고보니 초등학교 동창 친구였다고 한다. 둘은 작업도 많이 했고 평생의 친구로 지냈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그를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를 능가하는 작곡가라고 평했고 엔리오 본인은 그건 200년 후에 평가받을 일이라고 응했다. 존 윌리암스는 200년 후에도 반드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3년 7월 15일 11시 20분 CGV 오리 8관 D열 5석

비스타비전 스크린 시네마스코프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