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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과 제사상

snowfrolic 2021. 9. 22. 21:36

나는 설,추석 차례상이 기제사의 상차림과 어째서 동일한 걸까 의문이 들었다. 왜냐면 제사라는 것은 초혼재생, 즉 돌아가신 조상님의 혼백을 불러오는 것(하늘에서 혼을 부르고 땅에 있는 백을 불러 일으킴)을 기초로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애초 기제사 시간은 망일 새벽1시에 하는 것 (요즘엔 출근 편의상 대충 저녁에 하지만). 그런데 명절 차례는 아침에 지내지 않나. 밝은 아침에 귀신을 불러봐야 조상님이 오실리가 없다.

전해져오는 제사상 차림의 유래는 중국 남송 시대 유학자인 주자가 쓴 '가례'이다. 가정에서 지켜야할 유교예절인 관례 혼례 상례 제례에 대해 최초로 명문화한 것. 주자가례가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고려말로 추측되며 조선초 집권세력은 이것을 적극 채용하여 사회안정을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이이의 '격몽요결' 등 조선의 많은 예서들은 이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조선 후기 학자 신의경은 특히 초상부터 장제까지의 상례에 대해 상세히 정리한 '상례비요'를 썼다 (인조26년 1648년에 간행). 이에 의하면 상 이후 첫제사의 진설(상차림)은 다음과 같다.
가장 바깥줄에 과일 6기
다음 줄에 육포 나물 된장 젓갈 김치
다음 줄에 국수 고기 구이 생선 떡
다음 줄에 밥 술잔 수저 식초 국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당시의 진설은 가가례, 즉 집집마다 다르다가 통설이었다. 왜냐하면 주자가례는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음식 문화가 조선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럼 흔히들 말하는 홍동백서 좌포우혜 두동미서 어동육서 조율이시라는 진설은 어디에서 나온 걸까.
조선 시대에 유교문화를 강제한 것은 왕권강화를 위한 목적이라 양반에게만 제사가 허용되었고 (비용문제도 있음) 양반은 전체 인구의 10%이하였다. 조선 후기에 족보가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평민,노비들도 족보를 사서 성을 얻고 양반이 될 수 있었는데 이들은 집안의 진설같은게 없을테니 그것을 만들기 위해 생겨났다는 이야기. 또는 1940~60년대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도시로 나간 가족들이 제사를 지낼 때 상차림을 잘몰라 어느 문중의 진설이 퍼지며 표준처럼 자리잡았다는 것. 이때 서로 양반가의 후손임을 과시하기 위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상차림하는 유행이 생겨났다는 것. 신문기사 키워드 검색을 해보면 이 진설법은 1980년 이전에는 기사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차례상 표현은 신문 기사에서는 1980년대에 확산, 전파된 것을 알 수 있다."

차례는 명절에 지내는 제사로 실제로 차를 올리는 것. 이것은 중국문화로 신라 말에는 차를 올렸으나 조선에서는 차를 올리는 풍습은 사라졌다 (일부 지역에는 남아있다고함). 명절 제사는 예법에 있는 것은 아니어서 가례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약식 제사이므로 절차는 간소하게 술은 1번만 올리고 상차림은 계절에 맞는 음식을 올리며 밥 국은 올리지 않는다. 술을 1번만 올리므로 고기 등의 음식은 한접시에 담고 아침에 제를 올리므로 촛불은 켜지 않는다. 실제 1960~70년대 기사를 보면 설에는 떡국 식혜 수정과 약식등을 추석에는 송편과 술안주, 햇과일을 올린다고 하여 명절의 상차림은 기제사의 상차림과는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근대화를 거치면서 설 차례상이 추석과 혼재되고 마구 부풀려진 상태가 아닌가 싶다. 하다못해 1973년의 차례상 설명만 해도 지금처럼 과하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특히 밤, 대추는 한가위에만 언급되어 있지 설에 올린다는 이야기는 없다." 원문보기: https://m.blog.naver.com/mintoon/221208659379

“'사실 추석의 기본적인 성격은 천신제, 다시 말해 계절마다 새로 나는 곡식이나 곡물, 과일, 생선 같은 것을 종묘에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땅에 나는 제철음식, 조상이 좋아했던 음식을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전국화되니까 조금 이상해지는 것이죠.' 간단히 말해, 일반 상식처럼 통용되는 ‘제사상 차리는 법’도 발명된 전통에 가깝다는 설명이다."원문보기: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1409021710321&code=#csidxf75f341a5eafea493b61e7d8979fa66

몇차례 검색을 통해 정리해봤다. 이 내용들 조차도 50년전 이야기들이다. 제사 차례의 취지가 돌아가신 부모님 조부모님을 추억하는 것이라면 근거도 불분명한 진설이라는 것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프랑스라고 치면 수십년전에 돌아가신 (조)부모님을 기리기 위해 루이14세 당시의 음식을 만들어 그 예법으로 차려드리는 셈 (오히려 좋아하시려나). 최근의 제사 차례상은 돌아가신 분이 좋아하셨던 것을 올리는 등 많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내 다음 세대에는 아예 사라지지 않을까 싶어 괜한 의문에 긴 글을 쓴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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